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 후폭풍이 거세다. 여야가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조정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라는 새로운 주제까지 합의해 훨씬 더 큰 장이 펼쳐진 것이다.
110만명이 대상인 공무원연금에 비하면 2000만명이 대상인 국민연금은 사실상 전국민의 이슈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에 드는 경제적 비용은 물론 그 논의 과정에 드는 사회적 비용에서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언론의 비판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 “맞는 말이다”라며 발을 빼려는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일단 6일 본회의가 무난하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논의 시작도 전에 거리두기부터 하는 여당의 태도는 온당한 것일까?
잠시 시계를 한달 전으로 돌려보자.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8인 메모’와 육성 인터뷰가 공개된 게 4월10일이었다. 정국은 이날부터 온통 ‘성완종 리스트’로 뒤덮였지만, 그 직전인 8~9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던 내용을 환기해보자.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성장, 경쟁,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던 새누리당의 오랜 기조에서 벗어나 복지 확대와 증세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야당으로부터 “명연설”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내놓은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문 대표의 연설에도 똑같이 담긴 내용이다.
성완종 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정치권은 여야 대표 연설의 실행 방안을 놓고 경쟁에 나섰을 것이고, 여야 내부에서의 노선 경쟁도 가열돼 있었을 걸로 본다. 하지만 여야는 성완종 국면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 정략을 가동하며 재보선을 치러내는 데 급급했다. ‘새누리 완승, 새정치연합 완패’로 끝난 여진 속에 여야가 약속 시한을 지켜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합의한 것은 놀랍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성향 의원들은 그동안 유 원내대표의 연설이 성완종 사태에 파묻힌 것을 아쉬워하면서 “재보선만 끝나면…”, “공무원연금만 끝나면…”이라며 별러왔다. 특히 박 대통령이 여당에 던진 공무원연금이라는 숙제만 마쳐놓고 나면 당·청의 정치적 관계든 정책 분야에서든 그간 접어뒀던 날개를 활짝 펼 듯이 말해왔다. 야당도 국민 여론과 공무원단체, 정부·여당 사이에서 ‘줄타기’, ‘발목 잡기’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눈치 봐온 공무원연금이라는 굴레를 벗게 됐다.
이제 재보선도 끝났고, 6일이면 공무원연금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한다. 7일엔 새정치연합에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올가을 정기국회와 내년 4월 총선 공약을 책임질 새 원내사령탑이다. 여야 모두 소소한 전투와 해묵은 숙제를 마치고, 11개월 뒤 총선을 향한 새 출발점에 서는 셈이다.
공무원연금 합의와 동시에 쟁점으로 등장한 국민연금 문제는 이처럼 원점에 선 여야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볼 수 있겠다. 새누리당은 이미 유승민 원내대표에 앞서 김무성 대표도 조세·복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경제·사회의 근본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밝혀둔 바 있다. 국민연금 문제도 그냥 피할 일은 아니다. 이번 여야 합의를 두고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는 확정이 아니라 목표치”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새누리당도 공적연금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한달 전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담긴 자세로 돌아간다면, 피할 주제가 없을 것이다. 여야 모두 기다려온 ‘공무원연금 이후’ 아닌가. jaybee@hani.co.kr
황준범 정치부 기자
황준범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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