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시민운동에 헌신한 후배가 무슨 얘기 끝에 요즘의 상황을 정서적으로 피곤하다고 요약했다. 긴 세월,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고 그로 인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가 남다른 사람의 말이라 귀담아들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나 태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다는 그의 의견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 내내 같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서 더 그랬다.
누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는 광경, 이젠 익숙하다. 비아냥과 조롱은 기본이고 비난은 살점을 뜯어낼 듯 사납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그가 그런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뒷전이다. ‘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본인들의 프레임만 사실이다. 사소한 실수도 전인격적 결함의 한 징후로 간주한다. 만능간장도 아니면서 잘 알지 못하는 일에서조차 평론가나 검사 노릇을 자처한다.
표절, 데이트 폭력, 동성결혼 합법화, 여성혐오 발언, 집밥 요리사 논란, 배신의 정치인 성토까지 하나라도 언급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앞다퉈 분노한다. ‘나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 유명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거짓말 때문에 논란이 된 소녀의 아버지가 자기 탓이라 사과하며 아이를 보호해 주십사 호소했더니 국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할 거냐며 살기등등하다.
실수나 잘못이 있으면 그만큼만 비판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만 물으면 된다. 그런데 사소한 잘못에도 거창한 이론을 동원하며 전인격적으로 모욕하고 끝장을 내려고 한다. 범칙금 7만원만 내면 될 단순 교통신호 위반 사건인데 유명하니까, 가진 게 많으니까, 동성애자니까, 몸매가 착하니까 전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유명하지 않으니까 안전한가. 아니다. 어려워져 자기가 살던 집을 팔고 그 집에 월세로 계속 살고 있는 주부가 있었다. 그랬더니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계속 자기 집인 것처럼 사람들을 기망했다는 이유로 학부모 모임에서 믿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혀 아이까지 왕따당하고 있단다. 얼마 뒤 그 비난을 주도했던 이는 또 다른 이유로 비슷한 꼴을 당한다. 이제는 이런 되풀이들이 일상에서 넘쳐난다.
한 유명 가수의 학력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된 광기의 집단 타진요는 한때 회원수가 20만명에 달했다. 살인적 인신공격이 그들 일의 전부였지만 내건 명분은 거창했다. 정직한 대한민국, 상식이 진리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이란다. 그 헛된 사명감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났고 당사자는 병원에 가서 아이에게 주사를 맞힐 때도 혹시 의사나 간호사가 타진요 회원이면 어쩌나 가슴을 졸인다. 광풍이 지나고 나니 거기 가담했던 사람들은 나는 숟가락 얹은 거밖에 없다며 모르쇠 한다. 종말론자들은 정한 날짜에 종말이 오지 않으면 자기 망상을 수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참회와 기도 때문에 지구가 무사했다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사람 관계에서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살아내긴 어렵다. 엄마의 보살핌 같은 메시지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풍조는 그런 고단함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 국민의 타진요화(化)’가 될 것 같은 광기 어린 세태가 계속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돈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재능이든, 건강이든 그런 자기변호 능력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잘 모르면 멈칫해야 한다. 정확하게 모르면 침묵해야 한다. 다른 이를 먹잇감 삼아 자기식의 정의감과 취향, 지식을 드러내는 하이에나 같은 비판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반드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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