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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 그물] 공감의 대가

등록 2015-10-12 18:38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이웃치유자라 부른다. 그들이 실질적인 치유자의 역할을 담당해서다. 정기적으로 오는 이웃치유자만 100여명이고 그중 90%는 엄마들이다.

일주일 전 이웃에서 ‘이웃치유자데이’가 열렸다.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웃치유자들을 위한 정기적인 치유 프로그램이다. 그날 돌아가며 얘기를 나누다가 모두 놀랐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성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다. 종합병동 수준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분노조절이 쉽지 않고 이를 악물어 턱관절에 이상이 생긴 정도는 기본이다. 그들은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당황했으며 약해 빠졌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이웃치유자들의 이런 증상은 특별하지 않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문제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은 대개 그렇다.

세월호 공감자들의 노력은 끈질기고 치열하다. 사고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피케팅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오체투지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의 짧은 생애를 긴 글로 남기는 작가들. 영상으로 기억투쟁에 합세하는 영상전문가들. 희생자를 기억하는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들. 세월호 손수건, 리본, 팔찌를 만들어 배포하는 시민들. 별이 된 아이의 생일시를 지어주는 시인들. 한방진료를 해주는 한의사들. 매일 세월호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들. 집에서 새벽마다 촛불을 켜고 희생학생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부모들.

세월호 유가족도 아니면서, 벌써 500일이 훌쩍 넘었는데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디며 아직도 그러고 있다는 게 어떤 이들에겐 금방 납득이 안 될 수도 있다.

실제 세월호 공감자들이 치르는 대가는 혹독하다.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 매일의 피케팅으로 무릎 관절과 허리에 문제가 생긴 사람도 있고 세월호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인들과의 갈등과 관계 단절로 ‘혹시 내 성격에 문제가 있나’ 고민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웃치유자 정혜신은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과정을 ‘심리적 참전’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공감의 대가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만큼의 희생과 두려움을 동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발 들인 이상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귀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팔다리를 잃거나 실명할 수도 혹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몸이 성해도 밤마다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참전을 결정한 전쟁터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심리적 참전을 결정하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다. 참사의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피해자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미안함과 죄책감이 많은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잘하는 뛰어난 공감능력의 소유자다.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람살이에서 공감이란 비상시 나를 포함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휴대용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월호 공감자들이 치르고 있는 공감의 대가는 나약함이나 혼돈의 표지가 아니다. 외려 강인한 생명력의 징후에 가깝다.

아직도 세월호 속엔 미수습자 9명이 있다. 딸아이가 미수습자로 세월호 속에 있다는 엄마의 호소는 내장을 쏟아내는 듯하다. 많이 늦었지만 딸아이를 차디찬 바다에서 건져 올려 따뜻하게 흙으로 덮어주는 게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란다. 공감 못할 이유가 있는가. 안 찾아줄 이유가 있는가. 힘들고 괴롭지만 끝까지 응시하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그래서 공감은 곧 심리적 참전이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세월호 공감자들의 고통은 옳다. 기꺼이 심리적 참전을 선택한 세월호 공감자들에게 무한의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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