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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헬조선’ 일보

등록 2015-10-18 19:00

3포, 5포, 7포,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한 ‘엔(n)포 세대’가 된 젊은이들이 희망 없는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자학적 신조어 ‘헬조선’. 현실은 암담하고 미래도 안 보이는 이 사회를 ‘지옥보다 못한 계급사회’라고 젊은이들은 말한다. 젊은 세대의 참담한 현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도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보고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러나 헬조선을 보고 내놓은 조선일보의 해석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선일보라면 스스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보수언론이라고 자처할 텐데 무엇이 조선일보를 이리도 저급한 수구 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었는지.

조선일보는 지난 13일 ‘아무 일도 안 하며 ‘헬조선’ 불만 댓글…‘잉여’인간 160만명으로 급증’이라는 기사에서 헬조선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기사 제목만 보아도 조선일보의 의도는 훤히 꿰뚫어볼 수 있지 않은가. 마치 160만명이나 되는 잉여인간이 아무 일도 안 하며 불만 댓글이나 써대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헬조선의 진실이라고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게다가 기사 내용에는 두 명의 ‘잉여’ 젊은이 사례가 친절하게도 자세히 나오는데 그 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으니 조선일보 독자들은 당연히 이 160만명의 잉여인간이 거의 모두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는 이들 잉여 젊은이들이 “불만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독자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참 고약스러운 왜곡이다.

조선일보 기사의 두 젊은이는 “눈떠서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각종 TV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게 전부이고, “이런 일상이 너무 편”해서 “일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불만은 많단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잉여가 된 이유를 “사회에서 찾는 것”이란다. 이들 160만 잉여 젊은이들이 “인터넷 기사를 접할 때마다 다양한 악성댓글을 쏟아 낸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사회)’ 같은 말을 쓰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댓글로 해결하는 것”이란다. 현실을 정말 참 기기묘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잉여인간 160만명은 지난 8월 통계청 고용통계에서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다.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을 모두 잉여라고 치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조선일보가 인용한 바로 그 표의 아랫부분을 보면 조선일보가 잉여라고 한 160만명 가운데 20대는 30만명뿐이고, 50대·60살 이상이 90만명이라는 것을 금방 볼 수 있는데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조선일보의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조선일보가 불만 댓글이나 쏟아내는 잉여라고 매도한 사람들의 약 3분의 2는 조선일보의 주독자층인 50대·60살 이상인데 말이다. 기사에서 이 사실은 싹 빼버렸다.

불편한 현실을 보고 유언비어라고 부인하거나 또는 현실의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돌리는 수법은 전형적인 ‘수구 기득권 세력의 논리’다. 모든 것이 네 탓이다. 네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보면 “죽도록 ‘노오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극단적 사례 한두 가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사례를 찾아서 그것이 마치 전체인 양 떠벌리며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수구 보수 집단의 전형적 수법’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현실이 어렵다 보니 조선일보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빈둥빈둥 노는 젊은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겠지. 그러나 조선일보가 그런 소수의 극단적 사례를 가지고 피해자와 약자를 도맷금으로 매도하는 ‘수구집단의 수법’을 써서 국정원 ‘정치 댓글’ 수준의 기사를 거리낌 없이 써대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만 하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조선일보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에서도 태도가 변하는 것을 보니 헬조선을 보는 조선일보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헬조선’일보가 되려나 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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