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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식민지’가 된 어느 국립대 이야기 / 이기홍

등록 2016-01-11 18:47수정 2016-01-11 18:47

강원대학교는 지난해 8월 말 대학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결과에 책임을 지고 신승호 총장이 ‘돌연’ 사퇴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후임 총장 후보를 선정하기는커녕, 선정 방식을 놓고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신 전 총장의 ‘무책임한’ 사퇴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가 진정으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었다면, 신망이 있는 교수를 부총장으로 임명해 그를 중심으로 대학 전체가 단합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돌려막기 인사의 보직자들, 해당 단과대학 교수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임명한 친위 학장들, 그들로 구성된 교무회의 등 총장의 독단과 전횡의 틀은 그대로인 채 총장만 빠져나갔다. 그리고 대학평가 면접 심사에 책임자로 출석해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D급 대학의 오명을 불러온 강용옥 부총장이 총장 ‘직무대리’로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의 요구로 9월8일에 열린 (전체)‘교수회’는 신 전 총장의 집행부를 불신임하면서 각 단과대학에서 추천한 교수들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총장후보 선정과 그밖의 긴급한 일들을 처리할 것을 결정했다. 당시에는 총장 직무대리도 이에 동의하고 대학본부도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때문에 비대위도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른다’는 교육공무원법을 근거로 10월19·20일에 전체 교원의 투표를 실시할 수 있었다. 교원투표는 총장후보를 ‘직선제’로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사이, 교육부는 비대위가 불법기구라고 주장하면서 직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하면 임명(제청)을 하지 않음은 물론, 온갖 행정·재정적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총장 직무대리를 통해 겁박해왔다. 또 총장 직무대리와 대학본부는 직선제 실시를 위한 학칙 개정 작업이 시작되자 태도를 바꿔 비대위 활동을 무시하거나 방해하기 시작했다. 대표성과 정당성이 없는 대학본부의 ‘법적’ 권력과 강제력 없는 비대위의 ‘구성원(위임)’ 권력이 대립하는 이중 권력의 상태가 되었다. 대학본부의 방해, 부총장 퇴진운동, 비대위 해체 요구, 교수들의 농성 등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갈등과 혼란이 이어졌다.

마침내 불통으로 일관하던 총장 직무대리가 학칙에 밀려 지난해 12월30일에 소집한 (전체)교수회에서, 교수들은 ‘돈 없는 대학은 견딜 수 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 없는 대학은 견딜 수 없다, ‘나쁜’ 총장보다는 ‘없는’ 총장이 낫다’며, 직선제 실시를 위한 절차의 진행을 결의했다. 그럼에도 1월6일의 ‘교무회의’는 교원투표로 결정하고 전체 교수회가 결의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고, 총장 직무대리는 기존 학칙에 따라 ‘공모제’ 방식의 실행을 선언했다.

‘공모제’ 실행에도 규정 개정 등이 필요하지만, 대학이 겪게 될 불이익 때문만이라고 추정하기에는 석연치 않게, 교수들의 총의조차 거침없이 묵살하는 총장 직무대리라면 못할 일이 없다. 여기에 대학을 걱정하는(또는 이익을 계산하는) 일부 교수들이 협력해 총장 후보를 선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대학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동반할 것이며, 그렇게 선정되고 임명된 총장은 정당성과 대표성을 결여한 채 구성원의 동의와 참여 대신 독단과 강제로 대학을 이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기홍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이기홍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정당성 없는 권력이 구성원을 능멸하며 통치하는 것은 식민지 상황의 특징이다. 그 귀결이 대학의 파탄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덧붙이면, 해방 직후 미당 서정주는 ‘일제가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다’고 자탄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기홍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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