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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 그물] 너는 짖어라

등록 2016-02-22 19:56수정 2016-02-22 22:11

오래전부터 엠비시(문화방송)에 관한 글을 꽤 많이 썼다. 대체로 애정과 비판이 공존했는데 김재철 체제 이후론 유독 비판이 격렬해졌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와 품격이 급격하게 곤두박질하기 시작해서 그랬을 것이다. 3년 전 이 지면에서 ‘엠비시의 매체 신뢰도가 2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제목이 ‘응답하라 MBC’였다. 그게 엠비시에 관한 마지막 글이었다. 더 개선될 조짐이 없다고 느껴지니 비판이든 안타까움이든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엠비시 내부의 평가에서조차 기사의 에이비시가 사라진 뉴스가 속출하고 경영진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기자와 피디들은 해고하거나 방송과 상관없는 보직으로 보내졌다. 보게 되지 않을뿐더러 모든 뉴스가 ‘엠비시 생활뉴스’화돼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엠비시 ‘욕설국장’에 관한 뉴스를 보다가 오랜만에 깜짝 놀랐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최기화 엠비시 보도국장에게 취재차 전화해 신분을 밝혔더니 다짜고짜 “야, 이 개새끼야. 어디서 내 정보를 알아낸 거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라고 욕설을 퍼붓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보도를 접한 <한겨레> 기자가 당사자 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이번에도 다짜고짜 “야, 이 새끼들아. 전화 좀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다짜고짜 선빵을 날리는 솜씨가 퍽치기급이다.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이니 기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리 없다. 이 정도의 선빵을 날리면 기사화될 거라는 사실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두 번이나 쌍욕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짖어라. 나는 한 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번 욕설 보도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언론사가 서로를 취재할 때는 ‘같은 언론사끼리 왜 그러느냐’ ‘당신 몇 년차 기자냐’ 따위의 말들도 오간다고 한다. 욕설국장의 선빵은 그 정도의 동업자 관행도 훌쩍 뛰어넘는다. 품위나 공적 자아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다. 공영방송 보도국장이란 자의 행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그가 속한 공영방송의 수준은 오죽할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최 국장은 한국언론인연합회에서 선정한 참언론인 대상을 받았다. 중견 언론사 책임자들의 공적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한 상이란다. 발굴 잘 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위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일을 용인하는 권위적 조직에서는 그런 법칙이 더 정확하게 적용된다. 좀더 큰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고 깔보면서 ‘너흰 짖어라. 난 상관 안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면 결국엔 사람도 조직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상을 입는다.

엠비시 보도국장의 욕설 파문은 동종업계의 에피소드 차원에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엠비시라는 공영방송의 책임자들이 공적 자아의 개념은 있는지, 그곳에 있는 상대적으로 힘있는 구성원들이 다른 조직과의 관계에서 ‘너는 짖어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소생 가능성이라도 있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엠비시 기자협회에서 자기네 수장인 욕설국장을 대신해 공식 사과했다. 그나마 희망이다. 엠비시 기자들이 말했다. 묻는 자를 모욕하고 묻는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기자가 설 자리는 없다. 기자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대체하면 외려 그 뜻이 더 명확해진다. 안팎 모두를 위해 욕설국장은 사과하고 사퇴해야 마땅하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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