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통계 이용 사람과 비슷한 결론
그것을 지능으로 인정할 것인가
인간만의 영역 무엇인지 따져봐야
그것을 지능으로 인정할 것인가
인간만의 영역 무엇인지 따져봐야
컴퓨터의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인격을 부여하는 것을 ‘일라이자 효과’라고 한다. 지난 며칠 동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두고 나온 수많은 말은 여태 보지 못한 큰 규모의 일라이자 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알파고가 이겼다고 당장 컴퓨터가 사람처럼 직관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고, 이번 결과가 바로 미래에 기계가 인간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알파고는 인공지능 연구 및 다양한 분야의 공학 기술이 최정상에서 만나 빚어낸 결과다. 컴퓨터과학자로서 딥마인드에 최상의 축하와 존경을 동시에 표하고 싶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룩한 업적을 엄밀한 기술적 맥락에서 떼어내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알파고의 승리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에서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승부의 단초는 그런 표현 안에 이미 녹아 있다. 그간 인공지능한테 바둑이 어려웠던 것은 단순히 경우의 수가 컴퓨터로 계산하기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 근본적으로 바둑을 인간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바둑판은 0과 1로 깔끔하게 나타낼 수 있는 잘 정돈된 데이터다. 가능한 수순의 개수는 비록 엄청나게 많을지언정 궁극적으로 유한하다. 만약 ‘무한한 양의 컴퓨터’를 동원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인간과 대등하거나 더 우수하게 두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알파고의 성취는 현실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할 만큼 컸던 경우의 수를 확률적인 학습을 통해 계산 가능한 범위로 좁혀냈다는 점이다. 확률적인 학습이라는 표현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은 이렇게 두더라’이고, 둘째는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둬봤더니 대체로 좋더라’이다. 알파고는 확률적 추론을 통해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 작성된 프로그램이다. 바둑판 위에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론과 기풍을 떠나서 좋은 수와 나쁜 수 사이에 확률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알파고는 이를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둑뿐 아니라 인간이 확률·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성향을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분야라면 어디든지 앞으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점차 효과적으로 사람같이 행동할 것이다. 해당 확률분포가 실제로 존재하는 한 이것은 기정사실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과연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확률과 통계를 이용해 사람과 비슷한 결론만 낼 수 있다면 그것을 지능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아직 정해진 답은 없다. 저서인 <괴델, 에셔, 바흐>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아이비엠(IBM)의 딥블루가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결에서 승리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카스파로프의 두뇌가 체스를 어떻게 두는지 조금이라도 더 이해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인공지능 연구의 궁극은 지능의 본질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인공지능: 현대적 접근>이라는 유명한 인공지능 교과서의 저자인 스튜어트 러셀과 피터 노빅은 “비행기가 하늘을 날려고 새처럼 날갯짓을 할 필요가 없는데, 왜 컴퓨터가 사람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가?”라며 좀더 실용적인 견해를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알파고 이후에 대한 전망을 인간 대 기계의 신화적 대결 구도로 가져가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그보다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의 사고 중에 진정 인간만의 영역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처럼 고도로 집적된 기술자본이 사회 전반에 가지는 영향력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이 모든 논의가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 기술 전반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인 이해를 토대로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알파고와 관련된 인공지능 기술은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이세돌 9단이 포기하지 않고 따낸 값진 4국 승리의 의미와는 별개로, 미래의 인공지능이 최고 수준의 인간 기사와 적어도 대등한 바둑을 펼치리라는 전망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대국 이후 바둑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고 생각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딥블루 이후 체스 기사들이 컴퓨터를 상대로 훈련함으로써 특정한 스타일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실리에 기반해서, 다시 말해 ‘컴퓨터처럼’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는 카스파로프의 증언이다. 느닷없이 열린 문이지만, 바둑계가 새로운 시대를 진취적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어느 모로 보나 최고수에게 걸맞은 노력과 품격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게 큰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유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유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