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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노동개혁(?)의 침몰, 자업자득이다 / 이상호

등록 2016-03-13 21:11수정 2016-03-13 21:43

3월10일 340회 임시국회가 종료되면서 정부의 노동법 ‘개악’은 일단 좌절되었다. 물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바로 3월 임시국회를 소집한 상태이긴 하지만, 정치일정상 19대 국회에서 박근혜표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년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노사정 합의까지 이끌어내면서 순항을 거듭하던 노동시장의 구조개선 프로젝트는 왜 이렇게 침몰하게 된 걸까? 정부와 재계는 이 모든 책임을 귀족노조와 강성야당 탓으로 돌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노사정의 합의정신을 무너뜨린 건 바로 박근혜 정부다. 9·15 합의문에 들어 있지도 않은 기간제 고용기간의 4년 연장, 그리고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노동 허용 등을 끼워넣어서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을 밀어붙인 당사자가 바로 청와대다. 노동계가 극구 반대하고 입법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한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행정지침이라는 꼼수로 내리박은 것도 고용노동부다.

이번 노동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노사정의 협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과연 정부가 흔히 ‘협치’(거버넌스)라고 이야기하는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정말로 의심스럽다. ‘협치’는 ‘통치’(거번먼트)가 아니다. ‘협치’는 청와대에서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정부의 주도성이 과도하게 작용하고 노동계와의 대화 자체가 실종되면서 주요 이해관계자의 이해조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은 추락하고 기능은 퇴색했다. 실제로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이지도 않았고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정부 주도의 방침만이 작동했다. 흡사 1960~70년대 중남미에 유행했던 국가코퍼러티즘적 상황을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과 사회적 냉소로 인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과연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지를 확신하기 힘들다. 이번 노동개혁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깊은 상흔을 한국 사회에 남기고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켰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그래서 걱정이다. 2016년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고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불안요인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총선이 끝나고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고용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이런 징후들은 조선, 철강, 유화 업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재벌그룹에서 주력사업의 매각 및 재편 등으로 인한 대량해고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두 차례 경험한 경제위기 과정에서 우리나라 노사정이 보였던 기존의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이러한 거대한 도전을 헤쳐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주요 이해관계자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려면 사회적 대화라는 전략적 정책수단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노동개혁 과정에서 벌어진 정부의 과욕과 자만이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를 강타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정말 두렵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번 노동개혁 과정을 통해 훼손된 노사정의 신뢰와 협력관계를 복원하려면 정부가 먼저 자기반성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임박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촉발될 수밖에 없는 이해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할 일차적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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