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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돌 던지기의 미학 / 김종구

등록 2016-03-14 19:15수정 2016-03-14 20:08

바둑에서 패배를 인정해 ‘돌을 던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13일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알파고의 대리인인 아자 황 아마 6단이 한 것처럼 돌 2개를 집어 바둑판 위에 놓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사석을 반상에 올려놓기도 한다. ‘돌을 던지다’라는 말은 한자로 투료(投了)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프로기사 중 돌을 쉽게 던지기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일본의 오타케 히데오가 가장 손꼽힌다. 돌의 뛰어난 형태미와 행마의 간결함으로 ‘반상의 미학자’로 불린 그는 돌을 던지는 데서도 미학적 면모를 보였다. “바둑에서 질지언정 추한 수는 둘 수 없다”는 철학을 가진 그는 종반 무렵 한두 집 정도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도 서슴없이 돌을 던졌다. 국내에서는 김인 9단이 대표적인데, 그는 80여 수 만에 돌을 던진 적도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인생을 바둑에 빗댄 격언집 같은 것을 보면 돌을 쉽게 던지는 행위를 경계하라고 나온다. ‘돌을 던지는 것이 바둑에서는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아니다. 열세에 몰렸다고 생각할수록 확실한 뒤집기 한판으로 끝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치판도 돌을 잘 안 던지는 동네에 속한다. 지금 정치인 중에는 이세돌 9단의 승리를 바라보며 불굴의 투혼, 신의 한 수, 막판 대역전극 등의 단어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든 바둑이든 프로라면 정확한 형세 판단 속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돌을 던질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포석 국면에서는 유리한 형세를 유지했으나 그 후 잇따른 어지러운 행마로 대세가 기울었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인, 집착과 투혼을 혼동한 채 상대방의 실수만을 바라는 정치인 등은 한 번쯤 ‘돌 던지기의 미학’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바둑이든 정치든 한판 승부로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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