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총선부터 20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해왔다. 이번엔 유독 선거라는 실감이 덜하다. 혼자만 그리 느낀 게 아닌가 보다. 투표일이 코앞인데 부동층이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다른 선거와 달리 60대 부동층이 부쩍 늘어나서 새누리당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흥행요소’는 적은 반면 ‘혐오요소’는 많아서일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추태들은 만연한 정치 불신에 기름을 끼얹었다. 욕조차 아까워 고개를 돌릴 정도의 난장판이었다. 후보자 가족의 외모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였을 뿐, 선거판은 늘 이랬던 것 같다. 1990년대 신문을 들춰보니 당시에도 사람들은 “쟁점 없는 선거”라고 혀를 차고 있다. ‘북풍’ 공작이나 사생활 스캔들은 늘 있었지만 정책이나 비전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선거는 드물었다. 학자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정책 선거를 해야 한다’는 소릴 반복하고, 직업 정치인과 유권자 역시 그 말에 동의해왔음에도 현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막는 요인은 많은데 변화를 강제할 요인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권자는 정책에 대해 생각할 시간 자체가 없다.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는데 어떻게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인은 정책으로 토론할 이유가 없다. 잘못하면 표만 떨어져나가기에 안 하는 게 상책이다. 한국의 언론은 정책 기사를 쓸 이유가 없다. 독자가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이미지 정치’와 ‘프레임의 수사학’이 활개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내용을 숙고할 시간이 없으므로 정치적 토론이나 실천도 즉자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예컨대 이번 총선에서 회자된 양적완화론과 경제민주화론의 대립을 보자.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경기를 활성화시킬 극약처방”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론을 일거에 잠재운 카운터펀치”라고 평가한다. 정치평론가들은 프레임 싸움에서 새누리가 승리했다고 결론 내리고 더민주의 안이함과 아둔함을 준열히 질타한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양적완화론을 면밀하게 검증하기 어렵다. 불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에 시민들은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활성화에 더 솔깃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이 주창한 ‘한국형 양적완화’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우려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정책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돈을 뿌리는 일반적인 양적완화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 등을 사서 특정 기업이나 부문에 선택적으로 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일부 언론은 구조조정이란 말을 강조하면서 마치 군살을 도려내는 양 포장하지만 실은 군살을 빼기는커녕 조선회사나 건설회사의 거품을 키우는 자금이 될 우려가 크다. 게다가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한국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시에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경솔한 주장도 선거에서 이기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금세 동원된다. 어차피 선거 때 나온 공약은 안 지켜도 그만인 공약(空約)인 걸 유권자도 다 알지 않느냐는 뻔뻔함이다. 투표가 정치적 실천의 전부인 곳에서는 단일화가 선거의 모든 것이 된다. 그런 사회의 정치인은 공적 열망을 품고 대의를 설득하는 공인으로 남아 있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대신 그들은 대중의 욕망과 공포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자극할지를 경쟁하는 마케터가 되거나, 미래권력이 어디로 갈지 예측해 판돈을 ‘올인’하는 도박사가 된다.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말들이 떠다니는 이 무중력의 공간에선 불가능해 보인다. ‘대폭발’(빅뱅)이 필요한 이유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