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70석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야당 지지자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참패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현재가 착잡하다. 하지만 당선자 본인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겉으론 침통한 표정을 짓겠지만 속까지 그럴 가능성은 낮다. 혼자라도 의원 노릇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결정적인 건 국회의원 당선이 개인의 성취와 가문의 영광을 확인하는 결과라서 그렇다. 국회의원이 되면 어디에 가든 중심인물이 된다. 집안 대소사나 동창회, 하다못해 동서들끼리 모임에서도 그렇다. 왕래가 뜸한 먼 친척 어른들조차 이제 우리 집안도 조상님들에게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며 흐뭇해한다. 내가 국회의원 제자를 뒀다며 거나한 턱을 내는 선생님도 있다. 이 땅에서 사회적 인간으로 사는 한 그런 식의 ‘가문의 영광’ 구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괜찮은 능력과 품성을 갖춘 동시에 공적 자아의 개념이 투철한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어떤 공적 지위에 있든 개인의 성취와 가문의 영광이 먼저다. 자신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죽은 아비를 숭앙하는 일이 효도정치로 자리매김되고, 자기 밥그릇 지키겠다고 무고한 생명을 앗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가담했어도 개인적 사정을 앞세우면 대체로 용인된다.
그런 점에서 더민주 김기식 의원은 특별하다. 19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이달 29일까지만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그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밥값을 한 사람이다. 밥값이란 직업윤리의 다른 이름이다. 무슨 희생과 헌신까지 바라지 않는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기업체 사장이든 최소한의 직업윤리만 지켜주면 세상은 살 만해진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속설처럼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하다. 그게 밥값이다. 김기식이 그렇다.
4년 꼬박 정무위원회에 있었는데 탁월한 전문성과 집요함으로 모든 피감기관을 긴장시켜서 정무위 저승사자로 불렸단다. 이런 일엔 늘 그렇듯 약간의 부풀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속 당에서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하고, 시민단체 모니터단이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상을 4년 연속 수상하고, 국회법상의 의무 등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언론사에서 명예로운 의정 대상을 수여하고, 열정과 논리, 전문성에서 만점의 점수로 ‘국감, 김기식만큼만 해라’라는 헤드라인을 끌어낼 정도면 허명은 아니다.
참여연대 창립멤버로 18년간 시민운동가였던 김기식은 4년의 국회의원 생활이 그다지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단다. 의전도 불편하고 한 개인으로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적인 차원의 얘기고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부터는 국민의 세금을 받는 자의 도리에 100% 부합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서 개인 갈등이나 고민이 있더라도 그것을 지키고 살았다며, 어렵지만 그걸 잘 지켜온 거 같다는 고백은 자기 밥값을 충실히 했다는 말일 따름일 텐데 괜히 찡하다.
그는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말대로 그의 빛나는 성취는 마지막에 나오고 있다. 4년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룬 성과와 쟁점을 정리하고 20대 국회를 위한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시리즈로 발간하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임기를 2주 남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록을 받는 자의 도리여서 마지막까지 밥값을 하겠다는 건데 이런 보고서가 헌정 사상 처음이란 사실이 놀랍다.
이제 우리는 국회의원으로서 밥값을 제대로 하려면 어때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김기식 모델’을 가지게 되었다. 20대 국회는 딱 그만큼만 밥값을 해주기 바란다. 19대에서 밥값 제대로 한 김기식 의원, 수고하셨다. 고맙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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