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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한상균이 옳다

등록 2016-07-11 21:01수정 2016-07-11 21:04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새끼가 눈앞에서 살육당하는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미는 애간장이 타 죽는다. 영화 <베테랑>에서처럼 아비가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광경을 강제로 목격해야만 하는 어린 아들은 제정신일 수 없다. ‘정의는 내가 정한다’는 가진 자들의 억지 틀에 맞춰 을로 살 수밖에 없는 억울한 시간들은 지옥도다. 속수무책이란 그런 것이다. 무력감이 극대화된다.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모멸감이 몰려온다. 살 가치도 살 힘도 없다고 느낀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선고된 5년의 징역형을 목도하면서도 그런 속수무책의 심정이었다.

경찰은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는 등 무리수를 두었고 검찰은 존속살인죄에 버금가는 징역 8년을 구형했으며 법원은 호흡 잘 맞는 전문가들처럼 예상도 못한 중형을 선고했다. 한상균은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방청석을 쳐다보며 법정에서 끌려나갔다. 법 기술자들이 활개치던 30년 전 독재정권 시대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불과 일주일 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조사관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부당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땅의 시민들은 거기에 더해 참담하다. 무력감이 구정물처럼 온몸을 뒤덮는 느낌이다.

모든 판결에는 크든 작든 당사자들의 억울함과 분노가 짝패를 이룬다. 드러난 현상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 동기까지 알아차리는 법관을 만나 수긍할 만한 죄과를 받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와 관련한 판사들의 직업적 고충을 이해 못할 바도 없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틀려먹었다. 역사상 첫 조합원 직선 투표로 선출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민중 총궐기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흉악범과 맞먹는 중형을 선고했다. 알파고 같은 판결 기계의 판단이라면 ‘그나마 법의 논리는 정확했겠지’ 실소하며 결점을 보완할 대책이라도 세울 것이다. 이건 상식도 없고 논리도 편협해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발달 단계마다 한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결정적 존재’라 한다. 처음엔 부모였다가 그 후엔 선생님으로 친구로 상사로 이동하기도 한다. 갓 태어난 오리가 눈을 떠 처음 본 진공청소기를 엄마로 생각하고 일생 동안 애착을 갖는 건 가장 무기력한 순간에 마주한 존재라서 그렇다. 검사나 판사는 인간 사회에서 늘 결정적 존재다. 내가 가장 무기력한 순간에 만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나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런 마지막 보루가 공정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으며 게다가 알파고보다 못한 법 기술자라는 생각이 들면, 천하장사라도 살 떨릴 수밖에 없다.

요즘은 초등학교 교사들까지 아이들의 무력감이 심각하다고 한탄한다. 본래 무기력은 아이들의 정서가 아니다. 가히 무기력이 국민감정이라 할 만하다. 이런 무기력을 양산하는 핵심이 잘못된 검사와 판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존재임에도 본인이 그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그걸 어떤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것만큼 중죄에 해당하는 게 어디 있나.

오랜 해고자 후배가 판결 직후 한상균의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썼다. “형수 걱정 말아요. 상균이 형 2심에서 2년형으로 감형될 거예요.” “그러게. 얼마 전 군대 간 아들 면회 한번 가면 좋겠다.” 그러다 서로 눈물이 솟구쳤다고 했다. 개인적 인연이 깊어서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들인지 잘 아는 나도 읽다가 함께 목이 메었다. 무죄임을 알면서도 2년으로 감형될 거란 말을 위로라고 주고받아야 하는 이런 무기력한 상태를 조장하는 자들은 한낱 법 기술자에 불과하다. 이번 판결에선, 한상균이 옳고 그들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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