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으로 불려온 정윤회(왼쪽)씨와 부인 최순실씨가 2013년 7월19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서울 승마경기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사진은 지난 2013년 7월 과천 서울 승마경기장에서 박종식 기자가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굉장히 특이하다. 멀리서 망원으로 콩알만하게 찍은 것이어서 해상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얼굴만 트리밍하면 화질이 엄청나게 더 나빠지는 사진이지만 다른 매체에선 이마저도 없어서 달라고 한다. 그것도 ‘<한겨레> 제공’이라는 출처도 밝히면서.(물론 출처를 안 밝히고 무단으로 쓰는 비양심적인 언론사도 있다.) 또 이 한 장의 사진에 나온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각종 뉴스(결국 원인은 하나지만)를 몰고 다닌다. 그럴 때마다 거의 모든 매체가 이 사진에서 얼굴만 따서 쓴다. 담당 기자는 엄청난 특종을 한 셈인데, 기자도 자신이 찍은 사진이 특종으로서의 생명력이 이렇게까지 길 줄은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따로따로 찍힌 것도 아닌 한 장의 사진에 있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각종 매체에 등장해주시니 이야말로 ‘일타이피’, 사진기자 입장에선 이 두 사람에게 넙죽 절하고 싶을 정도로 고맙다. 어쩌면 속으로 빌지도 모른다. ‘제발, 나타나지 말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내 특종 포에버~’
사진 속 남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고 빨간 티셔츠에 선글라스를 쓴 여성은 그의 전처(당시에는 부부 사이였다)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다. 한동안 정윤회씨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만든 사람으로서 비선에서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사진이 없어 그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진 속 정씨가 각종 매체를 장식했다. 이 사진 속 정윤회씨 얼굴이 빛을 발한 건 이른바 청와대 문건 사건이 터졌을 때다. 공식 직책도 없던 정씨 등이 권력을 쥐고 공직자의 인사를 쥐락펴락했다는 내용인데, 그때도 정씨의 얼굴은 나오지 않아 다른 대부분의 매체가 이 사진에 나온 정씨의 얼굴을 따서 쓰기 바빴다. 이렇게 꽃놀이패 같던 정윤회씨에 대한 우리의 특종 사진은 정씨가 문건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 포토라인에 서면서 그 수명을 다했다. 3년 전 특종 사진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장렬히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미 여러 매체에 실렸으니 여한이 없다. 그 뒤 이 사진이 묻히나 했는데…. 웬걸? 이번엔 옆에 앉아 있던 최순실씨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원래 제1의 실세는 최씨였다는 소문에 이전에도 이따금 등장한 것과는 다른 전면적인 등장이다. 최씨는 별다른 직함도 없는데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을 보니 당분간 공식적으로 나타나긴 정씨보다도 더 어려울 것 같다.
1970년대 말 운동장에 모여서 ‘새마음의 노래’를 배웠던 장면이 생각난다. 현 대통령이 주도했던 운동의 주제곡인데 후렴구가 “새마음 새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황폐화된(?) 국민의 정신을 개조하겠다던 것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최태민 목사(당시 영애와의 관계는 검색하시길)였고 당시 ‘새마음 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이 바로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였다고 한다. 무려 40여년이 지났건만 그 찐득한 우정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화성에 사람이 사니 마니 하는 세상에 ‘새마음 운동’의 용사들이라니.
우리의 특종은 얼마나 계속될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고 싶은데 최근 한 시사 주간지가 2014년에 찍은 거라며 선글라스 벗은 최씨의 사진을 싣더니 <뉴스타파>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37년 전 영상을 공개했다. 특종의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그만 숨고 나타났으면 한다. ‘못 찾겠다 꾀꼬리~~이젠 그만 나와라.’
윤운식 사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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