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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태극기가 고생이 많다

등록 2017-02-24 20:26수정 2017-02-25 00:07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2005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일할 때 프랑스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인종갈등으로 인한 폭동이 파리 일대를 휩쓸던 때였다.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처럼 총을 든 시민들이 부패한 절대왕정에 맞선 나라, 자유·평등·박애의 이상이 살아 숨쉬는 곳, 문자 그대로 ‘혁명을 한 나라’ 아니던가? 왕을 처형했지만 역설적으로 ‘톨레랑스’의 나라, 관용과 포용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미를 창조하는 나라, 같은 서양권 국가지만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뭔가 진보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그런 나라로 이미지화돼 있었다. 그런데 그 좋다는 관용은 어디 가고 인종갈등에 폭동이라니?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취재기자와 같이 현지를 찾아갔다. 어찌어찌해서 파리 외곽에 살고 있는 알제리계 3세 프랑스인 하지씨의 가족을 접촉했다. 그들의 집에서 프랑스인으로 살고 있는 이민자 가족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편견과 차별 등에 대해 생동감 있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흑인도 동양계도 아닌 알제리계, 내가 보기엔 백인들과 외모상으로 별 차이를 모르겠는데 백인 주류들은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었던 모양이다. 어느덧 취재가 끝나고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문제는 주간지의 특성상 표지 사진을 하나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인물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고심 끝에 프랑스 국기를 든 주인공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프랑스 국기를 든 이민자 3세, 뭔가 얘기가 될 듯했다. 하지씨에게 집에 국기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아니 국기가 왜 집에 있죠? 전쟁 난 것도 아닌데? 한국에는 가정집에 국기가 있어요?” 한국에는 어지간한 가정집에 국기가 있고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국기를 건다고 말하자 가족들은 일제히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2차 대전 때 나치나 할 법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다.(나중에 통역이 말해줬다.) 빗나간 애국심이 몰고 올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역사적 교훈 탓이리라 짐작했다.

애국심, 자기가 속해 있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헌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 얼마나 거룩한가. 애국하는 선조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감사할 뿐이다. 그 애국자들이 간직하고 지켜온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럽고 태극기는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엔 태극기가 수모를 당하고 있는 듯하다. 땅바닥에 떨어져 오물을 뒤집어쓴 것도 아니고 바람에 잘 나부끼고 있건만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엉뚱한 곳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다. 분장 잘하고 영문도 모르는 굿판에 나와서 춤추는 광대의 형상이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몸짓에서 가녀린 숨소리만 나부낀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다. 일명 태극기 집회. 촛불집회는 모여서 촛불 든다는 거 같은데 명칭으로만 보면 태극기 집회는 모여서 태극기 흔드는 집회다. 이 집회에서 특이한 점은 태극기의 수만큼 성조기도 나온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고운 자태로 집회에 나오는 성조기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곳을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재조지은인가? 결초보은인가? 국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데 태극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다 좋은데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 구하자고 국기까지 흔들진 말자. 그리고 국기 들고 쿠데타 하라는 건 뭔 논리 구조인가? 부패왕정을 끝내고 삼색 깃발을 휘두른 그 나라 사람들이 볼까봐 많이 부끄럽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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