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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백선하 교수님, 전문가 정신으로 돌아오시기를 / 고병수

등록 2016-10-06 17:55수정 2016-10-07 10:53

고병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기대했던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대한 서울대병원·서울대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도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주변의 많은 의사들이 실망하거나 한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위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면서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켰고, 예견할 수 있는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 논하지 말자. 내가, 아니 동료 의사인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어떻게 300일 넘게 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그렇게 무책임한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장은 뒤늦게 “… 이번 백씨 사망진단서에는 담당의사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의사가 작성하는 서류들은 모두 중요한 행정 절차이고, 법률적 행위이지, 그런 철학적이거나 예술 행위가 아니어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작성해야 한다. 게다가 기자회견에서 백선하 담당의사는 급성신부전에 투석이 필요했는데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변명을 했다. 연명치료란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서 심장만 뛰게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엄연히 법으로도 연명치료는 무의미하기에 가족들의 동의로 거부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살아서 움직일 가망성이 없는 노인을 살리겠다는 거룩한 결심이라도 했었다는 건가? 그럼 그 당시 가족들과 싸워서라도 투석을 하도록 밀어붙였거나 살아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고 가족들을 경찰에 고발이라도 했어야지 않는가?

전문가 정신(Professionalism)이란 것이 있다. 경영학이나 사회학에서 쓰는 용어인데,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책임의식을 가진 것을 말한다. 의사로서는 수술이나 치료만 잘한다고 전문가가 아니란 의미이다. 백선하 의사는 백남기 노인을 수술하고 성심껏 치료했다고 쳐도 마지막 가는 길에 작성한 사망진단서는 전문가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 과학적이거나 원칙에 맞지도 않았고, 특위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조직과 동료들의 권유에도 끝까지 고칠 의사가 없음을 강변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모습도 아닌, 고집일 뿐이다. 전문가 정신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성명서에서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듯이 다른 동료들의 얘기와 반대 목소리도 경청하면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백선하 담당의사도 노인이 쓰러졌던 이유와 과정에 대해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든 없든 그것에 상관없이 사명감을 가지고 300여일 동안 어르신을 정성껏 치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르신과 유족들을 생각하며 사망진단서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주기를 권한다. 서류 작성 원칙에 어긋났다고 인정된다면 과감히 자존심이나 고집을 버리자. 더욱이 당신의 오류가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누를 끼칠 것이라면 이 밤을 새우면서라도 고뇌를 하기 바란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2500여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상기하지 않아도, 함께 같은 길에 서 있는 동료 의사들과 장차 의업을 이어갈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전문가로서의 정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빌어 본다.

[디스팩트 시즌3#22_의사 김용익 원장, 백남기 농민 사인을 말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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