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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디어 전망대] 정치 환경 감시는 언론의 기본 책무 / 김춘식

등록 2016-11-03 18:21수정 2016-11-03 19:30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대통령 당선 전까지 정치 궤적(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 승복, 세종시특별법 원안 고수)을 관찰한 언론은 정치인 박근혜를 주로 ‘신뢰’의 관점에서 조명해왔다. 유권자가 정치인의 행동을 인식하거나 평가할 때 언론의 관점을 차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언론이 애용한 ‘신뢰’ 프레임은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자의 인식 및 평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가령, 제18대 대통령선거 뒤인 2012년 12월24일에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들 가운데 ‘공약·정책이 좋아서’ 투표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14%에 불과했지만 ‘신뢰가 가서’ 혹은 ‘약속을 잘 지킬 것 같아서’ 찍었다고 답한 지지자의 비율은 22%에 달했다.

대통령에 대한 믿음 혹은 신뢰와 관련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 이유의 일자별 추이를 살폈더니 ‘열심히 한다/노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임기 내내 일관되게 그러했다. 단, 새누리당이 대선 전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대학 및 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이 이어진 2013년 6월 말을 기점으로 ‘주관·소신있다/여론에 끌려가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지지자들이 가장 많았다. 이후 2014년 3월까지는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혐의 공개수사, <조선일보>와 채동욱 간 혼외아들 공방 등 수많은 정치 쟁점들이 불거졌음에도, 대통령의 외국 순방이 이뤄진 직후에는 ‘외교·국제관계’를, 그리고 국내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나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이 불거진 시기에는 ‘대북 정책’을 근거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상위를 차지했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 어떤 이유에서 존재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0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 가운데 ‘최순실/케이(K)스포츠·미르재단’을 근거로 제시한 이들의 비율이 38%나 됐다. 유권자들이 포괄적 차원의 정책(경제, 정치, 문화)이 아닌 특정 쟁점을 이유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민심 이반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 및 증거 습득에서 기인한다. 뉴스 이용과 이후에 진행된 정보 단서에 대한 주목 및 숙고가 분노를 유발했고, 개별적 분노가 결집되어 형성된 집합적 여론이 결국 여당의 거국내각 제안과 최순실의 구속을 이끌어냈다(이 과정에서 실시간 검색어 중심의 인터넷 뉴스 생산 관행과 이러한 내용으로 초기화면을 도배한 포털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게이트 발생 이전에 주류 언론은 ‘문고리 3인방’으로 지칭되는 측근 중심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불통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데 그쳤을 뿐, 구체적인 정보와 증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언론이 본연의 파수견 역할에 충실했다면 강제 모금을 통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을 설립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정치환경 감시에 소홀한 주류 언론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가능케 한 잠재적 협조자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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