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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백남기, 밥과 말 / 정성헌

등록 2016-11-03 18:23수정 2016-11-03 19:08

정성헌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에 의해 쓰러지신 후, 317일간의 사투 끝에 9월25일 운명하신 백남기 선생님의 장례(11월5일 발인)를 40여일 만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누가 죽였습니까? 백남기 형제는 왜 죽었습니까?

서울대학교 의대 백아무개 교수가 어려운 말로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했습니다. 기다린 듯이 경찰은 백남기의 몸을 칼로 째서 열어보고 사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찰을 수백명 동원하고 부검이니 영장 재청구니 하며 여러 날을 소진시킵니다. 나쁜 짓을 한 자들의 수법은 늘 똑같습니다. 엉뚱한 말로 얼렁뚱땅하는 것이지요. 본질에서 비켜가게 하고, 진실을 흐리게 하고, 초점을 이동시키고 그리고 보통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지치게 하고….

지난해 11월14일 집회·시위의 현장은 “외인사” 같은 모호한 말이 아니라 경찰의 물대포 직사를 그대로 증언합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현 정권의 폭력에 의한 살인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잘못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화해와 공존의 길을 넓히지요.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가, 아베 정권이라는 정부를 꾸짖는 것은 왜입니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잘못 때문입니다. 과거사의 잘못을 고백, 참회하는 용기 없이 일본이 제정신을 갖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국민 생명의 안전과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국가폭력은, 그것을 행사할 때 지극히 엄정해야 합니다. ‘시위군중이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강경 진압했다’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대응”한 것이라는 정부의 후안무치를 받아들인다 해도, ‘작은 폭력’(시위군중)을 제압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백남기 물대포 직사), 즉 절대 폭력을 행사한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공동체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선 진상규명, 후 책임자 문책 같은 “법 청맹과니” 같은 소리는 접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우리는 별천지를 바라지 않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랄 뿐입니다.

백남기 형제는 왜 죽었습니까? 밥 때문입니다. 말 때문입니다.

쌀값이 뚝뚝 떨어집니다. 작년에 한 가마니(80㎏)에 15만~16만원 하던 것이 올해는 12만~13만원까지 내려가고 있습니다. 농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농촌은 벌써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쌀값은 50배 올랐는데, 부동산 값은 3000배 올랐습니다. 백남기는 “농민의 밥” 문제가 심각해서 서울로 왔습니다. 그것이 11·14 민중총궐기 현장에 나섰던 농민들의 모습입니다. “농민의 밥”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지 않고 폭력으로 금압하면, 농민의 밥 문제는 곧바로 “국민의 밥” 문제로 발전합니다.

백남기 형제는 농민의 밥, 국민의 밥 문제를 “말”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으로 왔습니다. 그의 나이가 69살이었습니다. 권력은 “말하지 말라!” “떼를 지어 큰소리로 말하면 더더욱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살이의 이치는 자명한 것입니다. 밥그릇이 쪼그라들면 사람 꼴이 안 되고, 말을 막으면 세상 꼴이 안 되는 것! 그래서 백남기 농민은 1980년대부터 농사를 열심히 지으면서 농민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습니다.

농민의 밥, 국민의 밥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고 모든 사람이 마음 놓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함께, 한결같이” 애썼습니다. 그 길에서 그는 잡혀가기도 했고 매 맞기도 했고 그래서 죽었습니다. 그를 살려낼 수 있을지 아닐지는 이제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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