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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촛불,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자

등록 2016-12-21 18:27수정 2016-12-21 19:17

노동자대투쟁이 민주항쟁의 제2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바람에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문제는 기업 안에서 분쟁하고 협상해야 할 일이 됐다. 그럴수록 정치는 우리네 살림살이와는 무관하게 특정 정치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게임이 됐다. 이런 87년 체제였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에 그토록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촛불 집회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탄핵 이후 한국 사회의 방향을 둘러싼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에 견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따져보려는 논의가 많다.

1987년의 한계라면,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6월 민주항쟁과 7, 8월 노동자대투쟁이 확연히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항쟁이 없었으면 노동자대투쟁도 없었을 것이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정권의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는 자신감이 새로운 투쟁의 불쏘시개가 됐다. 일터에서도 거리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각성이 있었기에 그 여름 그토록 많은 파업과 새 노동조합 결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달리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6월과 7, 8월은 전혀 다른 사건으로 여겨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온 국민의 관심사인 반면 “노동자도 인간이다”의 확인은 노동자만의 현안이었다. 전자는 정치인과 정당, 국회와 관련된 것이었고, 후자는 기업과 노동조합의 문제였다. 6월의 사건은 신문 ‘정치’면 소재였고, 7, 8월에 벌어진 일은 ‘경제’면에 실릴 내용이었다.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분리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확인되고 다시 굳어지는 과정이었다.

실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자본주의 사회 전반의 특징이다. 둘이 나뉘는 것은 민주주의의 확대에 울타리를 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헌법으로 민주주의를 약속하지만, 민주주의가 약속대로 사회 곳곳에 관철됐다가는 손해 보는 세력이 있다. 가령 노동자의 권리가 적을수록 제 몫의 이윤이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기업 안에까지 밀고 들어오는 사태를 어떻게든 막으려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허울을 용인하는 영역(정치)과 절대 그럴 수 없는 영역(경제)을 선명히 가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나뉘는 근본 이유다.

아쉽게도 우리의 1987년은 이 분리를 거스르기보다는 오히려 다져주었다. 노동자대투쟁이 민주항쟁의 제2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바람에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문제는 기업 안에서 분쟁하고 협상해야 할 일이 됐다. 그럴수록 정치는 우리네 살림살이와는 무관하게 특정 정치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게임이 됐다. 이것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주된 특징 중 하나였다. 이런 87년 체제였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에 그토록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촛불 시민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안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일당 처벌과 새누리당 해체뿐만 아니라 재벌 심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막중한 과제를 밀어붙이려면 뭔가 중간 과정이 필요할 듯싶다.

우선 광장의 힘으로 국회를 몰아세워서 탄핵안을 가결시켰던 12월9일의 승리감을 살림살이와 직결된 문제에서도 경험해 봐야 한다. 이런 경험을 거쳐야만 재벌과 맞설 만큼 사회개혁의 추진력이 강력해질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비해 한 가지 점이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모처럼 넓어진 ‘정치’적 통로 바깥이 아니라 바로 그 통로를 통해서 ‘경제’적 권익을 실현해야 한다. 사회권 실현이야말로 정치의 쟁점이며 정치야말로 사회 문제 해결의 통로임을 확인하고 이것을 ‘2017년 체제’의 주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부각하면 좋을까? 아마도 최저임금 인상 같은 사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최저임금제도 개선은 지난 총선에서 모든 야당의 공통 공약이었다. 광장의 힘으로 원내 3분의 2 선을 돌파해 탄핵안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면, 과반수를 넘겨 최저임금제를 개정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개헌보다 훨씬 수월하고 훨씬 시급한 개혁이다. 찾아보면 최저임금 말고도 중요한 과제들이 더 있을 것이다.

1987년과 비교하면 대통령 퇴진 운동은 아직 ‘6·29 선언’ 국면에도 이르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장기전이다. 하지만 그만큼 모색과 실험의 시간을 벌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시간을 발판 삼아 1987년과는 달라진 2017년을 만들어가야 한다. 진보세력과 촛불 시민의 고민과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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