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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디어 전망대] 자발적 집행인 / 심영섭

등록 2017-01-12 18:20수정 2017-01-12 21:56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철장 뒤에 앉아 두꺼운 안경으로 재판정을 내다보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인상은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직은 제국안전청 유대인강제이송과장으로 유대인학살을 진두지휘한 나치친위대의 대령이었다. 평범한 첫인상에는 내면에 숨어있는 ‘악의 비범성’이 보이질 않는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 집행관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로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관료라는 주장이다. 반면 다니엘 골드하겐은 <히틀러의 자발적 집행인들>에서 아주 평범한 독일인들이 유태인 학살 과정에 참여한 이유는 독일을 포함해서 서유럽 전체를 배회하는 반유태주의라는 유령이 뿌리 깊게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잘못된 정보와 언론이 부추긴 혐오에 독일시민이 감염되어 학교와 병원, 언론, 직장, 교회, 군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자발적 집행에 참여한 것이다. 결국 모두가 학살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이다.

독일사회에서 자발적인 ‘악의 의도성’을 만들어낸 동력은 언론인이었다. 20세기 초 유대인들은 독일에서 발행되던 전국일간신문의 대다수를 소유했다. 그럼에도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가 국민선동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매체는 영화와 라디오였다. 더욱이 히틀러와 괴벨스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여 상징조작을 하는데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인과 언론인, 예술가집단이 있었다. 그러나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대다수 언론인은 제외되었다. 그들은 주범이나 공동정범이 아닌 단순부역자였다. 어쩌면 중립적인 관찰자였다. 나치부역조사를 받은 대대수 언론인은 “(학살에 대해) 잘 몰랐다”거나 “기억에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모든 비극을 “지도자는 모르셨을 것”이라고 믿는 자도 있었다.

세월호 청문회와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를 지켜보면 악에 저항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몸부림친 사람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물속에 뛰어들었던 잠수사들, 기사와 영상을 구매해줄 언론사 하나 찾기 어려웠지만 1000일 동안 진도 앞바다에서 참사를 기록해 온 독립언론인들, 대통령의 불법시술을 고발한 사람은 간호사와 실무의료진이었다. 이 모든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은 왜 아무것도 인지하지 않았을까? 혹 언론이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의 자발적 집행관은 아니었는지! 현직 언론사 간부가 정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선 후보의 선거참모가 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리는 옮기는 풍토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까지 살아있는 권력이 두려워서 중립성이라는 직업윤리 뒤에 숨어 사회정의를 외면할 것인가? 혹 그 직업윤리가 서부개척시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하며 살아남기 위해 외치던 전통이거나 조선총독부 때부터 중립을 외치며 공안기관의 탄압에 무릎 꿇었던 비루함에 뿌리를 둔 건 아닐지? 지금 언론이 외면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에 무뎌진 언론인의 자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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