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기획자 새벽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결정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환호했다. 알고 보니 그날 곳곳에서 비슷한 풍경들이 벌어졌다. 이재용 구속 기념 떡을 돌린 이들까지 있다. 모난 성정을 가진 사람들만 가득한 나라여서 그랬을 리는 만무다. 삼성의 총수 일가는 늘 이 나라 법 위에 존재했다.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 땅의 불문율이었다. 이재용의 모친이 들으면 가슴 아프겠지만 이재용 구속에 대한 국민들 대다수의 반응은 ‘잘됐다’였다. 그게 정의고 법의 상식이라고 믿어서다. 하지만 이재용이 구속된 다음날부터 일부 언론들은 입을 맞춘 듯 국민들이 삼성의 비호와 음덕으로 살아가는 삼성의 신민이라도 되는 양 그런 입장이길 강요한다. 총수의 구속에 놀란 삼성 직원들은 출근길에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했다. 총수가 포승줄을 찬 모습을 본 삼성인들은 쇼크로 말을 잊었다고도 했다. 기업 구성원을 오너 일가의 동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서적 순장(殉葬)조쯤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 지경이니 이재용 구속을 ‘글로벌 기업 총수를 기어이 감옥 보낸 정치광풍’으로 매도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외국 언론에선 한국에 만연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극적인 전환점이라고 평가하는데 이 나라 언론들은 ‘한국서는 더 이상 기업활동을 하지 말라는 한국 사회의 자해적 결심’이라고까지 망언한다. 삼성의 경영 공백과 혼란은 재계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궁극에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준비된 말들이 트럭 야채장수의 녹음방송처럼 반복된다. 이런 반박과 옹호도 있다. ‘총수 한 명이 빠진다고 글로벌 기업 경영이 위태로워진다면 그런 지배구조가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기업의 생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미래에 투자해야겠다는 등의 결정은 오너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말이 아니다. 막걸리도 그렇게 격식 없이 마시지는 않는다. 세계 100여개국에서 임직원 50만명을 고용해 연간 300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라면서 오너 위인전을 쓰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인가. 그 정도 기업이면 당연히 경영 공백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어야 맞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고 애플이 끝나나. 케네디가 암살됐다고 미국이 무너지나. 이재용 구속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확인하는 너무도 늦은 긍정적 신호일 뿐인데 광고 등으로 삼성의 절대적 영향권에 있는 언론집단은 자기네 이익 추구를 온 국민의 걱정과 불안으로 환치시킨다. 자기네 이익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의 좋은 기운을 꺾어 버리려는 불온한 시도다. 기업 총수란 존재가 수갑을 차는 것이 충격인가. 누구든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이면 공황 상태에 빠진다. 기업 총수가 포승줄에 묶인 것을 보고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건 이어질 한국의 경제 위기 때문이 아니다. 수십년간 법 위의 존재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삼성과 그 일가에 대한 콘크리트 인식이 깨지는 데서 오는 충격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에 쨍하고 금이 간 것 때문에 받는 충격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의로운 충격이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하필 지금 삼성의 총수를 구속하면 어쩌나 따위의 말들이 난무한다. 이재용을, 대통령을 구속하기 가장 적당한 때는 언제인가. 이 나라 언론에 의하면 그런 때는 없다. 하지만 민심에 의하면 법치국가의 원리에 의하면 이재용들을 구속할 가장 적당한 때는 죄를 지었을 때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