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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뭍으로 온 ‘세월호’가 말해주는 것 / 오혜진

등록 2017-04-16 19:11수정 2017-04-16 19:21

오혜진
문화연구자

세월호 참사를 생각할 때마다 최은영의 소설 <미카엘라>를 떠올린다. 이 소설은 2014년 겨울, 작가들이 더 이상 ‘바다’를 ‘바다’로, ‘여행’을 ‘여행’으로, ‘기억’을 ‘기억’으로 심상하게 쓸 수 없어 난감해할 때 발표됐다. 그리고 나는 세월호 참사가 비유·상징·플롯·주제 등 모든 면에서 기존 문학 문법을 흔든 ‘문학적 사건’이 될 것임을 이 작품을 통해 조금 예감했었다.

주인공 ‘미카엘라’의 엄마는 25년 만에 방한한 교황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서 왔다. 친구들에게는 서울 구경도 하고 딸과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찜질방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한 노인 역시 세월호 참사로 손녀를 잃고 연락이 두절된 친구를 찾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간다고 했다. 그녀와 노인 모두 25년 전 교황의 미사에 함께 있었다는 점도 확인된다.

한편,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에게 연락이 오지 않자 미카엘라는 텔레비전을 켠다. 그리고 화면에서 엄마와 똑같은 모습의 중년여성이 단식투쟁 천막 아래 앉아 있는 걸 발견한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미카엘라가 분명 엄마라고 생각한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뒤돌아본 여자는 엄마가 아니었다.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라고 울먹이던 그 여자는 왜 ‘엄마’처럼 보였을까.

마지막 장면. 광장의 자원봉사자는 엄마와 함께 온 노인에게 희생자 학생의 이름을 묻는다. 그런데 노인이 말하는 이름은 뜻밖에도 ‘미카엘라’다. 미카엘라는 여자아이들의 가장 흔한 세례명이다. 그 광장에서, 수많은 ‘엄마’들과 ‘미카엘라’들이 서로를 부른다.

이처럼 이 소설은 ‘우연한 겹침’의 연속이다. 기존 소설이라면 미숙하다고 폄훼됐을 이 작위적 설정은 왜 필요했을까. 이 우연의 남발(?)은 당시 ‘진짜 유가족’과 ‘가짜 유가족’, ‘당사자’와 ‘외부세력’을 가르던 극우보수 세력의 선동을 염두에 둘 때 이해된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 참사를 ‘내 일’처럼 여겨 슬픔의 공동체를 형성할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애도의 자격을 선별했다. 그러니 모두가 ‘미카엘라’고, 우리 모두 ‘거기에 있었다’는 이 소설의 ‘우연’들은 바로 그 보수적 레토릭에 대항하는 문학적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를 ‘세월호 문학’에서 ‘우연’의 플롯이 획득한 정치적 가능성이라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배는 전 대통령이 구속되던 날 올라왔다. 이 일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한국사회의 새 국면을 열어젖히는 ‘사건’이 될 수 있을까. 뭍에서 보는 세월호의 모습은 새삼 낯설다.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물에 잠겨 파란 선미만 내보이던 세월호 참사의 대표 이미지는 어느새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채 부두에 길게 누운 세월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광화문의 세월호 농성장이 서울시민의 ‘일상’이 됐다면, 돌연 눈앞에 나타난 ‘지상의 세월호’는 그것이 여전히 ‘일상’이 아닌 ‘사건’이어야 함을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미수습자 수습,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요원한 목표 같지만,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상상을 아직 충분히 구체적으로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점을 잊지 말라는 것, 혹은 그 일들을 해내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뭍으로 온 세월호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모로 누운 지상의 세월호가 때로는 견고한 벽처럼, 때로는 거대한 물음표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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