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모처럼 미세먼지 걷힌 화창한 주말인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과학·기술 연구자와 연구생, 시민들이 모였다. 현장에서 만난 몇몇한테 참석 인원을 추산해달라니 오가는 사람을 합해 대략 600~1000명으로 헤아렸다. 왠지 광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법한 ‘과학을 위한 행진’에, 관변단체 행사도 아닌데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참석한 건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누구는 1930년대 ‘과학 데이’ 행진 이래 처음일 거라고 말했고 누구는 당시 행진이 사회지도자 중심으로 이뤄진 걸 생각하면 연구자 주도 행진은 처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광장에 모인 얼굴에서도 다소 상기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광화문 행진은 지구촌 600여 곳에서 열린 과학행진의 하나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서도 과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저마다 행진했다. 지구촌 행진의 진원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반발한 미국 연구자들의 행진이었다. 미국에선 대규모 인원이 참석했고, 그래서 과학자 행진이 역사상 처음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연구자들이 거리에 나선 건 1960년대 반핵시위 때에도 있었지만 이번엔 정부 정책에 반발해 ‘과학의 가치’를 내걸고 시민과 함께 대규모로 나섰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는 해석도 덧붙여졌다. 첫발을 뗀 지구촌 과학행진이 앞으로 어떤 운동으로 전개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여전히 과학행진이 정치 운동으로 흘러 과학 객관성을 해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과학 객관성은 이를 훼손하려는 권력과 맞서 싸울 때 지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러 평가와 보도를 보면, 적어도 과학행진이 과학, 정부, 시민사회 간의 관계를 두고 풍성한 논의의 자리를 열어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과학행진은 단지 정부 소속 연구자의 사전검열, 연구예산 삭감, 공개정보 제한, 규제과학 기준 완화와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미국 안의 운동에 그치진 않을 듯하다. 각지에 퍼진 행진은 저마다 다른 파장의 울림을 낼 테니까. 광화문광장에서 빛나진 않을지언정 저마다 진정성 있는 가치를 품고 연구실을 지키는 연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국내에서도 지금 어떤 변화가 일고 있음을 분명 느낄 수 있다. 무엇을 연구할지 큰 틀을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은 이제 자율적인 연구자들의 연구를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연구생에게도 비정규직 연구원에게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연구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같은 과학계 소수자에게 균등한 기회는 더욱 보장돼야 한다. 노벨상이 최정점인 양 그것을 향해 달리자고 온통 갈망하는 사회, 과학기술 다양성을 다 살피지 못한 채 첨단 과학기술에 ‘올인’이라도 할 듯이 공약하는 정치인, 성과를 위해 열악한 연구노동을 견디도록 요구하는 연구환경을 돌아보며 ‘정말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하고 되묻는, 적어도 그런 장을 과학행진은 마련해주고 있다. 행사를 사진에 담고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모 화면 한쪽에 행사장 바깥의 세종로 횡단보도를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이 들어왔다. 과학행진 안에서 보는 시선이 아니라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 시민과 함께하는 지구촌 과학행진은 사실 과학의 가치가 연구실 안에만 있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연구자 사회 안에 학문 생태계의 뿌리를 튼실히 가꾸는 일 못잖게, 시민사회를 향해 그동안 우리 사회에 부족했던 사회적 책임을 넓히고 가꾸는 일도 과학의 가치와 신뢰를 높이는 길일 테지. 횡단보도 시민들이 함께 담긴 화면에 셔터를 눌렀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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