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또 한 명의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가게 됐다. 매년 수백 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는 한국에서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소식이건만, 그의 감옥행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1심 재판부가 그간 사법부 내에서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진 ‘병역거부 = 징역 1년6월’이라는 공식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입대를 거부했던 신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지난해 6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뒤집어 그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고, 결국 지난 6월15일, 대법원이 형을 확정하면서 그는 감옥에 가게 됐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을 그저 “이례적인 사건”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최근 사법부 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 2015년 5월 이후 최근 2년 남짓 쏟아진 무죄 판결은 모두 28건으로, 올 한 해만 벌써 15건의 무죄 판결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신씨와 마찬가지로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혀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럼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재판부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들 재판부가 입을 모아 지적하는 건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때 적절한 조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점이며, 대체복무 등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이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형벌의 목적을 응보, 예방, 교화라고 말하지만, 이 중 병역거부자를 1년6개월씩이나 감옥에 보내는 일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일까, 신씨의 무죄 판결을 뒤집으면서 징역을 선고했던 항소심 재판부가 양형의 이유로 꼽았던 것은 응보도, 예방도, 교화도 아니었다. 그저 재징집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량이 1년6월이라는 점이었다. 사법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내외 요구도 점점 거세어지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반복적으로 병역거부자 수감이 양심, 사상,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침해라 지적하며 정부에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전세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을 담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분석 보고서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가 존재하는 한국의 상황은 “미해결 과제” 섹션에서 다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들어선 정부가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제앰네스티가 제시한 8대 인권의제에 대한 답변서에서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 중 최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기본권”이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하여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그 약속이 이뤄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금도 400명에 가까운 이들이 감옥에 갇혀 있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의 수는 거의 2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앞으로 감옥에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병역거부 사건을 놓고 공개변론을 하고도 2년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전향적 판결을 내놓아 사법부의 ‘내적 갈등’을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또 새 정부가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요한 국정과제로 추진해, 2021년 유엔의 다음 병역거부 보고서가 제출될 때에는 한국 상황이 보고서의 “미해결 과제” 섹션이 아닌 “모범 사례”에서 다뤄지기를 기대해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