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 박근혜 정부가 정권 인계 과정에서 ‘달랑 열장’도 안 되는 문서를 넘겼다고 해서 구설에 올랐다. 그런데다 지난해 9월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청와대가 문서세단기 26대를 구입하여 지속적으로 문서를 파기했다고 알려졌다. 대통령기록물을 파기한 것으로 보이는 이런 행위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한 엄격한 심사를 거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권 인계 과정에서 몇장 안 되는 자료를 넘긴 것도 용납할 수 없지만, 문서 파기를 대대적으로 감행한 것은 ‘증거인멸을 시도한 범죄적 행위’에 틀림없다. 정권 교체에 따른 문서 이관 논란이 이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업무 매뉴얼 552개와 정책 백서 77권, 보고서와 지시사항 일지 5만6970건을 넘겼을 때에도 이명박 정부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엠비(MB) 정부도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3만2446건의 외교문서를 대량으로 집중 파기했다는 의혹을 남겼다. 정권 인계 과정에서 청와대가 대량 문서파기에 관여했다면, 각 부처의 상황은 온전했을까 하는 우려는 자연스럽다. 새 정권의 민정수석실이 국가정보원·기무사·검찰·경찰 등 주요 공안기관들에 문서 파기 및 삭제, 유출을 금하도록 지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기록물 파기가 이 정도였다면, 기록에 의하지 않고는 기술할 수 없는 정확한 역사는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정권 이행기의 이런 기록 말살은 이 나라가 역대 왕조실록을 남겼을 정도로 기록 전통을 중시한 나라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고려·조선 왕조에서는 국왕이 바뀌면 전임 국왕 때에 남겨진 기록을 종합·정리하여 실록을 편찬했다. 실록 완성 전후에 이를 열람하려고 넘보는 국왕이 없지 않았으나, 왕권도 그 기록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남게 된 것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이런 전통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기록 중시의 이런 전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에 이르러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다. 이 시기의 다양한 경험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것은 기록이 오히려 재앙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 기록조차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상황에서 좌우갈등과 독재체제는 개인의 기록마저 제대로 남길 수 없도록 했다.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화를 시도한 것은 국민의 정부 무렵이다. 민간의 기록 보존 운동에 힘입어 국가기록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법적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0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기록 관리가 본격화되었고,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기록 보존의 체계가 잡혀갔다. 이런 법률에 따라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도 문서 파기의 범죄적 행위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록 관리는 현행 보호 저장 위주에서 공개 활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최장 30년간 보호받도록 한 것이 실정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그 기록도 공개가 원칙이다. 정부기록물을 공개 위주로 전환하는 데는 기록 편찬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집·보존 위주의 현행 기록관리에 편찬 기능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사료 편찬 전문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국가기록 관리 업무에 연동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 때 국편과 국가기록원의 통합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지만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두 기관의 일원화는 기록관리를 수집·보존·편찬의 단계로 체계화시키고, 사료 수집 등 대내외적인 활동에서도 공신력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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