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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보편적 누진증세가 답이다 / 김정진

등록 2017-07-26 18:22수정 2017-07-26 20:54

김정진
변호사

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를 한다고 한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해서 세율을 올리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고소득자와 대기업만 세금을 올리면 실제로 복지국가의 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멀어질지도 모른다.

첫째는 충분한 재원 확보가 되지 않는다. 최고부자를 중과세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복지국가를 위한 충분한 재원 확보가 되지 않는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하위층은 하위층대로 조금이라도 소득세를 내야 충분한 재원이 확보되는데 한국은 면세점이 너무 높다. 2016년 조세연구원 보고서를 보더라도 노동자의 경우 평균임금의 50%를 버는 1인 가구의 실효세율은 0.7%에 불과하고, 4인 가구는 평균임금의 74%가 되어야 과세가 된다.

둘째는 부자들만 중과세하는 시스템으로 가면 저복지의 미국식 체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소득세의 고향인 미국은 한때 소득세 최고세율이 90%인 적이 있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한 공산주의를 실현할 10대 방책 중의 하나인 “고율의 누진세”가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다. 일단 90% 과세구간에 해당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다양한 형태의 비과세와 소득공제 제도가 집요한 로비를 통해 실현되어 과세를 피해갔다. 그 결과 미국의 세법은 전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세법이 되었다.

이에 반해서 복지국가 스웨덴은 경제발전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우파가 집권하던 시절부터 비교적 면세점이 낮은 세제를 유지하였고, 사민당이 연정 등을 통하여 집권할 때도 그러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모든 사람이 소득세를 내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세제를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의 조세부담률과 복지지출을, 스웨덴은 오이시디 상위권의 조세부담률과 복지지출을 가지게 되었다.

셋째 부자증세는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을 협소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조세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계층은 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이 없어 조세개혁에 무관심해지고, 많이 내는 계층은 격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조세의 공평성 제고나 증세가 불가능하게 되는 이상한 정치체제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목도한 것은 절대로 세부담 대상이 되지 않을 계층이 “세금폭탄”이라고 반발하고, 세부담 대상이 된 계층은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조세개혁을 좌절시키는 이상한 정치였다.

그러나 부자증세의 반대말은 서민증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되 부자는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는 “보편적 누진증세”다. 보편적 누진증세가 되면 다들 세금을 내기 때문에 탈세에 대한 사회적 지탄 및 재정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진다. 만약 우리나라가 면세점이 낮아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맞게 소득세를 내는 형태의 세제였다면 이명박씨는 4대강 사업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고, 박근혜씨도 10월 유신을 하기 전에는 최순실 게이트 같은 세금 낭비는 시도조차 못 했을지 모른다.

유럽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든 시기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였던 시절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1인당 지디피가 3만달러에 육박하는데도 복지국가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세금을 걷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특히 보편적 누진증세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부자증세가 부자증세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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