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사회당 정부의 최근 경제 실적은 긴축이 아니라 서민 소득 증대가 경제 회생의 발판임을 증명한다. 굳이 연립정부가 아니어도 중도파와 좌파가 사회 개혁의 쌍두마차로서 서로 협력할 가능성과 방법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포르투갈은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 중 하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채 급증 때문에 이른바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벌린 유럽 국가들을 일컫는 피그스(PIIGS) 중 P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그런데 최근 포르투갈 경제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수요가 살아난 덕분이다. 실업률은 10% 안팎으로 진정됐고, 2016년도 재정 적자도 1970년대 민주화 이후 최저치다. 트로이카가 강요하는 긴축 정책 때문에 실업 증가와 복지 축소-소득 감소-경기 침체-부채 의존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그리스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포르투갈도 처음에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트로이카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2015년 10월 총선이 전환점이 됐다. 여당이던 우파 ‘전진 포르투갈’이 최다 득표(38.6%)를 하기는 했지만, 과반 의석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득표 2위(32.3%)는 중도좌파 사회당이었다. 익숙한 정치 관행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중도 좌·우파의 대연정이 들어서는 게 보통이었다. 실은 사회당도 이때까지는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정책 차이도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회당은 다른 선택을 했다. 아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당 왼쪽에서 두 정치세력이 거둔 성과 때문이었다. 우선 8.3%를 득표한 통일민주연합이 있었다. 이 조직은 공산당과 녹색당의 정당연합이다. 포르투갈 공산당은 1970년대까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끈 유서 깊은 정당이다. 지금도 노동운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늘 10% 좀 안 되는 지지를 받았는데, 2015년 총선에서도 이 성적을 유지했다. 한편 또 다른 급진좌파 정당인 좌파블록이 10.2%를 얻었다. 좌파블록은 민주화 투쟁 당시 공산당보다 더 급진적이었던 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들이 1999년에 결성한 정당이다. 이들은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 확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주력하며 주로 청년층에서 지지를 늘렸다. 2015년 총선에서는 여성 대표 카타리나 마르팅스가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두 급진좌파의 득표를 합치면, 20%에 가까웠다. 사회당의 안토니우 코스타 대표는 우파와 대연정을 결성했다가는 자칫 그리스나 스페인의 중도좌파처럼 지지층이 급진좌파로 대거 이탈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래서 국내 우파와 유럽연합의 볼멘 항의에도 통일민주연합, 좌파블록과 정부 구성 협상에 돌입했다. 사회당 왼쪽의 두 세력은 정부 출범에 합의하는 전제조건으로 연금 동결 해제, 삭감된 복지수당의 원상회복, 해고요건 완화 계획 철회 등을 제시했다. 즉, 긴축 기조 폐지를 요구했다. 협상 과정에서 더 풍부한 탈긴축 조치가 새 정부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상수도와 대중교통의 사유화 중단과 재국유화, 단체협상 원상회복, 최저임금 인상 등이 그것이었다. 사회당과 두 급진좌파가 합의하지 못한 쟁점도 있었다. 사회당은 공적 자금으로 살린 부실 은행을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통일민주연합과 좌파블록은 금융 부문 국유화를 주장했다. 두 당은 궁극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사회당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두 급진좌파는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결성하지는 않았다. 사회당 정부에 찬성표를 던지되 직접 장관을 맡지는 않는 그림자 여당이 됐다. 아무튼 이후 포르투갈의 새 정부는 다른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트로이카의 압박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와는 정반대로 나라 밖 정세가 뜻밖의 원군이 됐다. 유럽연합은 2016년 스페인 총선에서 반긴축 정당 포데모스의 집권을 막는 게 우선이었기에 옆 나라 포르투갈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더구나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자 더더욱 조심하게 됐다. 덕분에 포르투갈의 숨통이 열렸다. 포르투갈 사회당 정부의 최근 경제 실적은 긴축이 아니라 서민 소득 증대가 경제 회생의 발판임을 증명한다. 또한 이런 성과를 만들어낸 정당 간 협력과 견제 모델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굳이 연립정부가 아니어도 중도파와 좌파가 사회 개혁의 쌍두마차로서 서로 협력할 가능성과 방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촛불 이후 한국의 정당 구도와 관련해서도 분명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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