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소외된 과학의 가치

등록 2017-09-14 18:20수정 2017-09-14 20:07

오철우
선임기자

2008년 버락 오바마가 후보로 나선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네이처>에 ‘다음 대통령이 읽어야 할 과학 책’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여러 권위자가 추천한 여섯 권 목록에는 초자연의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 스테디셀러 <눈먼 시계공>, 현대 과학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흥미진진한 생명과학의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가 담겼고, 과학과 공학의 연구개발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룬 책들도 추천됐다. 과학을 단지 신기하고 멋지다거나 미래 먹거리의 성장동력일 뿐이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과학의 가치를 음미하면서 또한 과학과 정치·경제의 관계를 짚어주어 여러 생각거리를 던지는 책들인 듯했다. 한국 대통령은 어떤 과학 책을 읽어야 할까?

최근 과학기술혁신본부장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여러 과학기술 관련 인선 논란을 두고서 과학기술계의 지인들한테서 복잡한 감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인 관련 인선에선 왜 감동이 아니라 실망이 앞설까? 이럴 리 없다는 당혹, 기대가 너무 컸다는 실망, 때로는 매서운 비판이 들려왔다. 그래도 지켜보자는 신중한 목소리도 있었다.

돌아보면 논란은 과학과 공학의 (예비)연구자들이 연구 일상에서 지키고자 애쓰는 ‘과학의 가치’에 관한 문제였다. 박기영 본부장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전 교수 연구진의 연구부정 사건과 연루된 당시 주요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박성진 장관 후보자는 과학계의 합리적 검증과 소통에서 한참 벗어나 유사과학으로 받아들여지는 창조과학의 공학자라는 점에서 이런 과학·공학자의 실망은 더욱 깊었을 것이다.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과학기술 관련 인선 파문이 왜 잇따를까? 여러 지인들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워했다. 여러 추측과 그림도 그려졌다. 청와대의 일부 인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얘기,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듣는 청와대의 채널이 잘못 맞춰진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몇몇 분은 과학기술을 그저 경제발전의 도구로 여기며 결실만을 보는 인식이 이 정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이 논란의 바탕에 있으리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과학기술은 잘 차려진 선반 위에 올려두고서 필요할 때 쓰는 도구이거나 대상물일 뿐일까?

과학 기자로서 과학기술계 주변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현실 과학의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연구자들이 일상의 연구 활동을 이어가는 연구현장에 있었다. 거기엔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있다. 대부분이 지식을 올바로 생산하고 성과를 내려 애쓰지만 안타깝게 그르치는 이도 있다. 아주 간혹 자기 이익을 위해 지식을 오남용하는 이도 있다. 발견의 기쁨도 있지만 비정규직의 불안도 있다. 연구비를 둘러싼 희비와 논란은 자주 보는 장면이다. 전문성을 상징하는 과학기술 지식을 적절히 쓰는 전문가도 있지만, 전문가라는 이미지에 기대어 전문성의 정치를 행하는 이도 있다. 이렇게 생동하는 과학기술은 연구현장에서 과학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활동이다. 그래서 그릇된 길로 나아가는 과학 활동엔 옐로카드나 레드카드가 던져지고, 건강한 과학의 가치를 함께 다듬으며 나란히 걷는 과학 활동엔 북돋움이 보태진다.

창조과학의 공학자인 박성진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 절차가 ‘부적격’ 청문보고서를 남긴 채 모두 끝나고 임명 여부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세계 1위이며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19조원(2016년)이 넘은 과학기술 신흥강국인 한국에서, 이제는 ‘과학의 가치’도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로 여겨져야 한다.

오철우 미래팀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들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1.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들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문제는 윤석열만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2.

문제는 윤석열만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그 폭동은 우발이 아니다…법원으로 간 ‘백골단’ 3.

그 폭동은 우발이 아니다…법원으로 간 ‘백골단’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4.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보수 응답자 93명 증가’ 여론 조사가 빚은 착시 [아침햇발] 5.

‘보수 응답자 93명 증가’ 여론 조사가 빚은 착시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