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어떤 포용적 복지국가인가? / 이태수

등록 2017-09-19 17:58수정 2017-09-19 19:06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그간 한국의 복지국가는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김대중 정부 때 비로소 복지국가의 길로 처음 들어서 기초공사를 했고, 노무현 정부에 와서 ‘비전2030’으로 설계도를 제시하며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하에선 기초공사도 중단하고 나름의 설계도도 없이 갈팡질팡 땜질 공사에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민생은 오각(五角)의 파도에 휩싸인 돛단배 신세가 되었다. 의료, 육아, 주거, 교육, 노후의 불안이라는 생활의 위기,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의 비애, 청년실업으로 점철되는 노동의 위기, 패자부활 없는 경제 비민주화의 생태계가 야기한 경제의 위기, 저출산과 각자도생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위기, 조세 불공정, 국정농단으로 초래된 정부의 위기, 이른바 5대 위기로 대한민국호는 침몰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이러한 헬조선의 비극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민중의 분노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이 정부의 사명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이며, 국정목표에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로 그것이 표현되어 있다. 한마디로 포용적 복지국가를 하겠단다. 어떤 의미의 포용일까?

먼저 계층의 포용이어야 한다. 각각이 처한 상황에서 시장의 민낯과 이익 추구의 본성 앞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던져져 있는 이들이면 누구라도 배제하지 않고 복지국가의 우산 아래 들어오게 해야 한다. 부양의무자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인 100만명의 빈곤층, 사회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아이를 낳아도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자영업 부부들, 재취업이 안 되어 생활이 허물어지고 있는 경력단절 여성… 누구나 필요에 따라 복지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제도의 포용이 필요하다. 그간 다양한 계층을 적절하게 포섭하지 못한 것은 제도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1921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선보인 아동수당, 질병으로 입원하게 될 때 격감하는 소득을 보충하는 상병수당, 장기실업 탓에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실업부조, 자영업자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부모보험 등도 도입해야 한다. 심지어 기본소득까지, 선진 복지국가가 이미 그 실효성을 보여주고 있는 각종 제도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급여의 포용이란 관점도 중요하다. 제도는 있으나 적절한 수준을 보장하지 않다 보니 급여를 받아야 하는 이들 대부분이 실질적으로 제도 바깥에 있다. 비급여 의료비의 부담으로 파산하는 가계, 용돈 제도로 전락한 국민연금, 당장 연금 혜택조차 없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노인층에게 20만원만을 고수하는 기초연금, 저소득 한부모가정에 있으나 마나 한 양육수당… 이들에게 제도는 허울이지 않겠는가?

끝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갖기 위해 동원되어야 하는 정책영역의 포용이다. 그간 민간의 영역으로만 보았던 고용창출 영역, 시장에 의존했던 장기요양과 보육 영역, 보험시장의 활성화란 명목으로 오히려 조장되었던 실손보험의 영역… 이들을 공공성의 확보라는 이름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렇게 계층, 제도, 급여 그리고 정책 영역, 이 네 가지 차원에서 배제를 거부하는 것이 포용적 복지국가가 내포하는 실질적 의미가 되어야 한다. 폭발 직전인 민생 도탄의 화약고는 북핵만큼 위급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만이 아니라 국민민생보장회의도 필요하다. 포용적 복지국가의 우산을 넓고 크게 펼쳐 한국판 ‘국민의 집’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더 시급히, 더 확고히 보여야 한다.

시간은 언제나 집권세력의 편이 아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1.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2.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극우 테러는 어디서 왔을까? [세상읽기] 3.

극우 테러는 어디서 왔을까? [세상읽기]

[사설] 경호처 김성훈·이광우, 언제까지 활보하게 둘 건가 4.

[사설] 경호처 김성훈·이광우, 언제까지 활보하게 둘 건가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5.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