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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찬핵 환경주의자’의 교훈

등록 2017-10-18 18:00수정 2017-10-19 15:25

러블록 같은 ‘찬핵 환경주의자’의 문제는 거짓말쟁이라는 점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위험이 아닌 다른 층위의 위험이나 사회적 비용을 도외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편협성’이 진짜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총체적이다.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를 포괄한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친원전 세력이 핵발전을 옹호하는 데 환경운동가를 적극 동원하고 있다. ‘찬핵 환경주의자’ 마이클 셸런버거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실체야 어떻든 환경운동가가 핵발전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친원전 세력이 단지 이해관계 때문에 핵발전의 위험을 도외시한다는 소위 ‘원전 마피아’ 프레임을 희석시킬 수 있다. 언론이 딱 좋아할 서사도 있다. 셸런버거는 그린피스에서 반핵운동을 했지만 훗날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핵발전 찬성론자가 됐다고 한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올바른 길로 들어선다는 ‘회심 서사’는 오랜 세월 숱한 종교집단이 애용해온 효과적인 선전 도구였다.

‘찬핵 환경주의자’는 얼핏 형용모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름 일관된 논리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가이아설’로 생태주의 이론에 큰 획을 그은 제임스 러블록이다. 2004년 <인디펜던트> 기고에서 러블록이 핵발전을 지지한다고 밝혔을 때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지구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관점에서 환경 위기를 경고했던 이 전설적 생태이론가는 어떻게, 그리고 왜 핵발전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러블록의 설명은 단순명료하다. “인류 최대의 위협은 기후변화다. 핵발전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생태적 대안이다.” 셸런버거 같은 이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원전업계가 자신만만하게 “원자력은 청정에너지”라고 홍보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2006년에 저서 <가이아의 복수>를 출간하면서 러블록은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묵시록적 예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40년에 이르면 60억명이 홍수·가뭄·기근으로 도태(cull)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중국은 거주가 불가능한 지역이 된다. 같은 시기 사하라사막이 유럽 중부, 즉 파리까지 올라올 것이다.” “2100년에는 세계 인구 80%가 절멸할 것이다.” 2010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급기야 이렇게 주장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보류하고 모종의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러블록이 생태파시즘(eco-fascism)으로 완전히 기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게 그 무렵이다. 기후변화 시기 예측도 너무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러블록은 결국 2년 뒤인 2012년, <엠에스엔비시>(MS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렇다, 내가 실수했다. 변화 속도가 내 예상과는 달랐다”며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된다.

러블록의 ‘(환경을 위한) 민주주의 유보론’은 어떨까. 2016년 <포린 폴리시>에 실린 어느 칼럼은 이에 대한 적절한 반박 중 하나다. 러블록의 생각과 달리, 민주주의를 유보하면 오히려 환경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 “여러 국제지표는 권위주의 정권보다 민주주의 정권에서 에너지 안보나 저렴한 에너지 공급보다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로버트 루니, ‘민주주의가 기후변화의 답이다’)

우라늄 채굴·제련부터 발전소 건설과 우라늄 광산 매립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면, 핵발전을 “온실가스 제로”라거나 “청정에너지”라고 말하기 민망해진다. 양보해서 핵발전의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더라도, 고준위 폐기물 처리 등 핵발전 자체의 잠재적 위험은 그대로 남는다. 환경운동가 스티븐 틴데일은 이런 위험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렵지만 더 안전하며 핵무기화 가능성이 없는 토륨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륨원전은 한 번도 제대로 상용화되지 못한 방식이다. 더욱이 핵무장을 원전 유지의 이유로 꼽는 한국의 일부 친원전 세력은 ‘핵무기 못 만드는 원전’ 따위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러블록 같은 ‘찬핵 환경주의자’의 문제는 거짓말쟁이라는 점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위험이 아닌 다른 층위의 위험이나 사회적 비용을 도외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편협성’이 진짜 문제다. 하지만 격변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총체적이다.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를 포괄한다. 총체적 인식에 기반하는 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끝내 바른 답을 찾을 것이다. 다만 문제를 숙의할 시간이 짧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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