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우리가 지금 주저앉으려고 해도 앉을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서 했는데, 이런 결과를 얻으니까 너무너무 힘들다.” 밀양송전탑 경과지인 부북면 평밭마을에 사시는 한옥순 어르신의 말씀입니다. 불편한 다리 수술조차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후로 미루고 3개월간 전국을 다니며 탈핵을 호소하신 한옥순 어르신은 언제나 우렁차게 경찰과 한전, 정치인들과 맞서던 분이셨습니다. 공론화위의 보고서를 읽다가 놀라고 가슴 떨린 대목이 있었습니다. 시민참여단이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충남 천안 계성원에 모였던 9월16일 시행된 2차 조사에서 신고리 5·6호기의 위치를 모르는 분들이 70%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최종투표 때도 결국 30%에 달하는 시민참여단이 신고리 5·6호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공론화에서 사람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핵발전소 주변 주민은 물론이고 밀양 주민들과 같은 송전선로 주민들의 일상적인 고통도, 그리고 부산, 울산, 경남의 382만명 당사자의 처지와 입장도 거의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번 공론화위는 매몰비용이나 원전 수출, 신고리 5·6호기가 빠졌을 때 부담하게 될 가스발전 비용 등 경제 논리와 전력 공급의 안정성에 매몰되었습니다. 그래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동시에 핵발전소는 축소한다는 모순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정부는 탈핵 로드맵을 발표하였지만 우리의 문제를 핵 없이 지속가능한 세상이 아니라 오직 신고리 5·6호기 문제로 축소하여 사실상 탈핵을 2079년에나 달성될 먼 훗날의 문제로 치부하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요? 흔히 촛불혁명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이 정부에서 핵이라는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 일이 왜 벌어진 것일까요? 밀양 어르신들은 지난 12년 동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억지 쓰지 말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할 것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단 한 번도 희생을 강요하는 한전과 경찰, 그리고 정부로부터 아주 작은 사과조차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 강요된 수용이 이루어졌다면 밀양은 일찌감치 잊히고 제2, 제3의 밀양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을 것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 우리 사회가 한발짝 진일보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24기의 핵발전소가 지어질 동안 단 한 번도 주민의 뜻을 묻지 않던 정부가 지금은 탈핵 공약을 고이 접고 갑자기 당사자 주민이 아니라 국민에게 결정권을 양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주민은 국민이라는 부류에서도 배제됐습니다. 먼저 저부터 반성해봅니다. 촛불혁명·조기대선 국면에서 엄중하게 약속한 공약이 후퇴했는데, 그것이 뒤늦게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복원되리라고 쉽게 믿은 저를 반성합니다. 왜 이제 와서 수용을 못 하고 딴소리하느냐는 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범한 분들이 무려 383명이 입건되는 희생을 치르며 버텨온 밀양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밀양의 고통은 여전하고 정부의 공론화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밀양의 고통은 핵발전소를 증설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신고리 5·6호기라는 틀을 넘어 모든 신규 핵발전소를 백지화하고, 핵발전소 이면에 감추어진 송전탑을 걷어내야 합니다. 슬픔도 무기가 됩니다. 슬픈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다시 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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