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논설위원
수능 연기 소식에 아들은 “어…”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뒤 보내온 문자는 “피시방 다녀올게요.” 주말 밤엔 친구들과 낮에 다녀온 걸로 성에 안 찬다며 형을 끌고 노래방에 갔다. 수능 끝나고 자른다던 머리카락도 잘랐다. 속이 터졌지만 웃는 얼굴을 할밖에. 한편으로 그간 아이가 내색을 안 했을 뿐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이날’을 위해 컨디션과 스케줄은 물론, 익숙한 환경에서 시험 보려 학교 친구들과 선택과목까지 맞추기도 한다. 의연히 연기 결정을 받아들인 수험생들, 특히 공포와 낯섦을 이겨내고 시험을 치른 포항 학생들에겐 각별히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싶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포항시 시험장엔 소방대원들이 배치됐다. 포항/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번 연기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이토록 수능에 많은 것이 걸려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했다. 12년 공부와 인생까지 한날한시 평가받는 데 대한 문제제기도 많아졌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김상곤 부총리는 “미국 에스에이티(SAT)처럼 자격시험이 아니라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 분산이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수능이 실력이라도 제대로 측정하는 건가. 두 아이 대입을 겪으며 의문이 커졌다.
94년 시작된 수능의 초기 3년간은 재수생보다 재학생의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학원 강사들의 이른바 문제 ‘해체’가 가속화되고 <교육방송>(EBS) 교재 직접 연계율이 높아지며, 누가 더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기출문제를 풀었느냐가 관건이 됐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고 공부해야 진짜지”라고 떠들던 나 같은 사람은 물정 모르는 엄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문제유형을 암기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무한반복 문제풀이만 강요하는 것이 지금 수능”이라고 잘라 말한다.
학교에 수행평가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수능은 이십년 넘게 표준화된 오지선다형이다. 고교학점제 학교를 나오든 대안학교를 나오든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부모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1점 차이 변별력을 위해 몇몇 문제를 있는 대로 꼬아 모두를 좌절에 빠뜨리는 지금 수능은 소수 수도권 대학 지망생을 위한 것이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 소장은 “느슨한 등급제의 자격시험으로 해도 지금 대학의 70% 정도는 수능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데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처럼 주입식 교육과 객관식 시험에 국가표준화 교육과정을 펴오던 일본은 대대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2021년초 시작될 대학입학공통시험엔 국어·수학에 서술식을 도입하고, 영어의 경우 쓰기·말하기 능력까지 보기 위해 민간시험과 연계했다. 더 중요한 건 고교와 대학 교육과정을 ‘자주성, 토론, 깊이있는 학습’이 가능한 ‘능동적 학습’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교수법, 내신 평가, 교사 자격증 제도까지 다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뿐 아니라 사고력·판단력·표현력 같은 역량, 품성을 포함한 태도 등을 학교에서 기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방향을 먼저 세우면 평가방법 개선은 그에 따라 나온다. 국가교육회의가 지난여름 벌어졌던 ‘수능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 논란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면, 영원히 답은 없다.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활용에 방점을 찍는다면, 지금의 줄세우기 내신 평가와 학생부도 그대로 둘 순 없다. 누군가는 ‘또 입시 바꾸라는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수능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학생부 관리는 엄두도 못 냈던 내 아이들도 꼼짝없이 정시였다. 그래도 진짜 ‘대학수학능력’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 아닐까. 지금이 기회다.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