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편집국장 한 진보적인 칼럼니스트가 10여년 전 옥천 언론문화제에 내려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를 준비가 안 된 채로 일찍 시작해 지역 토호와 기득권 세력에게 다 넘어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요원하다.’ 교육 자치에 대한 이야기도 그와 같았다. 현실론적으로 논리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뭔가 ‘배알이 꼴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방자치 2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 나아졌는가? 그가 말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 나아졌는가? 그놈의 ‘준비’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부러 그 말뜻을 곡해하자면, 왜 배알이 꼴렸는가를 고백하자면, ‘너희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 공부 좀 더 해야 해’라는 서울 지식인의 콧대 높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의 말대로 지역은 열악하다. 20여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게 많다. 지역 토호와 기득권 세력의 벽은 철옹성 같고, 그들은 빨간 옷이든 파란 옷이든 언제든 바꿔 입고 선거에 나오는 데 능수능란하다. 그래서 별 구분이 안 간다. 지역에서는 똑같이 기득권인 그들끼리 바통터치를 수없이 했다 한들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이것을 일찌감치 경험했던지라 이미 큰 기대를 접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지역의 부패와 부조리가 심해질수록 그런 말들은 더 어떤 매뉴얼처럼 양산될 것이다. 그 말이 가슴 깊숙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멀리서 지켜보는 ‘훈수’여서다. 그리고 사실 그 말은 틀렸다.?여전히 지역이 열악한 것은 지방자치를 준비가 안 된 채로 시작해서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시작하지 못해서다. 지역에 대한 공부와 연구가 짧았다. 일천한 지식으로 의견 수렴도 하지 않은 채 지역을 등외 국민처럼 여겨 ‘이거나 먹고 떨어져’ 하는 형태의 지방자치 체제에 대한 각성과 성찰은 없다. 행정의 효율을 말하며 행정구역 통합을 마구잡이로 이야기한 정부가 과연 지방자치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가? ‘풀뿌리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일찌감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했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그것에 대한 목소리를 얼마나 높였는가? 연방제 수준이라 하지 말고 ‘연방제’를 강하게 요구하며 제대로 된 자치를 요구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지역 농촌을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저 높은 서울에서, 먼발치에서 짧은 경험과 알량한 지식으로 지역 농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왜곡이다. 지역이 옛날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 틀을 바꾸려고 미세한 틈이라도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변방에서 ‘두근두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콩닥콩닥’ 맥을 유지해온 사람들이 있고, 가느다란 숨구멍이라도 무던히 뚫어오던 사람이 있는 거다. 제발 지역을 ‘지역 토호와 기득권이 판치는’ 곳으로만 매도하지 말라. 그 안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 저항하는 이들을 눈 씻고 찾아봐 달라. 그것은 먼발치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감히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지 말라. 부디 타자화, 대상화하지 말아 달라. ‘너’가 아니고 ‘우리’다.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지구’이고 ‘지역’이다. ?아직도 엉터리 대통령령(지방자치단체의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규정)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당해연도 지방세와 세외수입 총액으로 소속 공무원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 교육경비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지 아는지 모르겠다. 이 때문에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71곳이 교육경비를 지원할 수 없어 그 지역 학생의 학습권이 위협받는다. 가장 못사는 기초지자체다. 옥천도 끼어 있다. 지역을 떠나는 이유 중에 ‘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면 이런 ‘대통령령’은 폐기되어야 맞다. 기초지자체별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켜서다. 곳곳에 이런 폐기돼야 할 제도가 널려 있다. ‘지역 자치’ 하려면 제대로 하자. 그런 의미에서 연방제 수준도 못 간 이번 개헌, 농업·농촌의 ‘농’을 제대로 담지 못한 이번 ‘개헌’은 그야말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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