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가수 신해철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술 먹고 누리집에 쓴 글이 문제였다. 2009년 4월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합당한 주권에 의거 로케트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고 비꼬았다. 보수단체가 그를 고발했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이유다. 열달 이상 고심한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신해철은 “이 조그만 해프닝이 시대의 부당함을 증거하는 표시라도 된다면 일생의 보람”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에 10초 동안 머문 것을 두고, 보수단체들이 보안법 위반 논란을 제기했다고 한다. 잠입·탈출 혐의란다. 보안법에 기댄 우스꽝스러운 억지가 계속된다.
1948년 12월 반공법 제정으로 시작된 보안법은 한때 우리 삶을 옥죄었다. 술 취해 정부를 비판해도 구속하던 ‘막걸리 보안법’ 시절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04년 “국가보안법을 역사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폐지를 시도했다. 장외투쟁으로 맞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가로막혔다.
보안법은 이미 사문화의 길로 들어섰다. 정부는 1989년 검찰이 화가 신학철을 구속한 근거가 된 작품 <모내기>를 지난 1월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보안법 위반 기소자도 2015년 50명, 2016년 27명, 지난해엔 14명에 그쳤다. 법무부가 지난달 공개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에서도 보안법 남용을 막겠다며 ‘입건하지 않거나 기소유예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김정은 위원장을 그 수괴로 보는 보안법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시장에선 이미 김 위원장을 캐릭터화한 ‘으니굿즈’ 상품화도 논의 중이다. 보안법을 역사박물관에 보낼 날을 목 빼고 기다린다.
신승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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