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주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두 정상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뛰어난 조연 역할이 없었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폼페이오가 두 차례 방북 뒤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거나 ‘그는 신뢰할 수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폼페이오는 트럼프 대통령과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가 됐다. 북핵 문제는 성과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정치인 폼페이오’의 자산이 될 수도, 부채가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여의도 사랑방’ 수준이지만, 폼페이오의 정치적 장래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르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에 성공한다면, 폼페이오가 2024년엔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6~7년 뒤 미래를 논하는 것이 부질없긴 하지만, 북핵 협상의 동력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네차례나 선출된 그가 정치적 야망이 없을 리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부침이 있겠지만, 현재로선 공화당에서 폼페이오와 겨룰 만한 정치적 라이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올해 초까지 ‘떠오르는 샛별’, ‘트럼프의 복심’으로 통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너 서클’은 아니다. 특히 트럼프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가 헤일리 밑에서 유엔 부대사로 일한 존 러너가 지난 4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들어간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인터넷 매체 <액시오스>) 여기에 <뉴욕 타임스>는 2020년 대선에 헤일리와 펜스 부통령이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 상대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름을 부었다. 펜스 부통령의 정치적 존재감도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가 워싱턴의 백악관 근처 트럼프 호텔에서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자주 열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대통령 출마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자녀에게 충실하겠다”며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지난 4월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힘이 약해지기를 기다리며 차기를 도모하기 위한 ‘전술적 후퇴’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로선 대선 후보 목록에서 밀리고 있다. 세 사람에 비해 폼페이오는 차근차근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4선 하원의원 경력에 이어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무부 수장을 맡으며 행정 경험을 쌓고 있다. 중앙정보국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원들한테 상당한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신임 중앙정보국 국장인 지나 해스펠도 그가 추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폼페이오는 국무장관에 취임한 뒤 지난 5월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오늘로 국무부의 채용 동결을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전임 렉스 틸러슨 장관의 ‘채용 동결’을 뒤집으며 국무부의 숨통을 틔워줬다. 한 직원은 “틸러슨 장관 때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다”고 귀띔했다. 이민, 이란 핵협정, 기후변화 등 상당수 현안에서 강한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고, 특히 지난해에는 북한 정권 교체론까지 암시했던 폼페이오가 북한과 협상에 들어가자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놀라운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 양보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 폼페이오에게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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