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노동자·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정리해고에 맞섰다는 죄로 3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2년6개월이었다. 그렇게 합해 5년6개월을 옥에 있다 나왔다. 그 옥살이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은 빛과 같은 속도로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삶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남의 일인 양 물끄러미 보기만 하는 쌍용차 사용자다. 정리해고에 따른 서른번째 희생자, 김주중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그야말로 각계에서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노동자들은 다시는 입고 싶지 않았던 상복을 다시 꺼내야 했다.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가 차려졌다. 분향소에는 밤낮으로 조문을 위한 시민들의 걸음이 멈추질 않는다.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함께하는 손길에 먹먹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부당한 정리해고 문제는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노동자의 문제, 모든 가정의 문제이기에, 수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각 종단도 예배와 미사, 법회를 열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정리해고 살인진압 사법거래 국가폭력이 뒤섞여 불러온 노동자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쌍용차가 하루속히 사회적 합의(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복직)를 이행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정리해고 사태 뒤 공장을 떠난 이들도 전화로 쪽지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온다. 도지사와 장관, 국회의원까지 연이어 조문을 오는 모습은 이전 정부에서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인도 순방길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줄 이은 조문객 속에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 있다. 바로 쌍용차 임원들이다. 쌍용차 임원들은 정리해고가 마무리되자 제각각 승진을 거듭하며 고액 연봉을 보장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경영 위기를 가장하기 위한 회계 조작이 세상에 밝혀지고,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을 때에도, 쌍용차 임원들은 여유를 보였다. 그 알 수 없던 자신감의 뒤편에 검은 사법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수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파업이 끝난 뒤 정리해고의 트라우마를 무기 삼아 고용불안 채찍으로 공포를 휘두르며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순종을 강요해왔다. 이 채찍을 계속 휘두르기 위해선 해고자 복직을 외면해야 했으리라. “저 밖에 해고된 놈들을 봐라. 너희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지.” 그런 임원들에게 최근 쌍용차에 쏠리는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게다. 하지만 무려 서른명에 이르는 금쪽같은 목숨이 끊긴 비극이다. 그 책임은 누가 뭐라 해도 공장 안에 있는 임직원의 것이 제일 크다. 계속 외면하고 눈길을 돌린다고 사라지는 책임이 아니다. 아무리 손에 들고 있는 채찍이 달콤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 공장 담벼락 안의 작은 권력에 취하기보다, 쌍용차의 갈등을 치유하고 미래를 바로 세우며 각계의 관심에 답해야 할 때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은 “말을 잃었어도 마구를 지으라”(失馬廐可築)고 했다. “그래야 다가올 일이라도 대처할 수 있기 때문”(來者猶可及)이다. 쌍용자동차 최종식 사장이 곱씹어야 할 경구다. 쌍용차 임원을 제외한 모두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뛰고 있는 요즈음이다. 최 사장은 대한문으로 오시라. 와서 고인에게 조문하고, 해고자들의 손을 잡으시라. 다시 대화를 시작하시라. 그게 해결의 시작이다. 말은 잃었지만, 늦게라도 마구를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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