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나라 안에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있었군요.” 지난 7일,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 둘째 날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이었지요. 전국 각 지역에서 온 출판·편집인들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어리둥절해했고, 환호했고, 행사장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깜짝 놀라 순식간에 몰려들었답니다. 정작 그녀는 경호원과 수행원 몇명만 대동한 채 가벼워 보이는 걸음이었습니다. 40분 남짓, 그녀는 ‘지역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더러 궁금한 것은 물어보며 화성행궁 광장 한가운데 전시된 ‘온 나라 지역책 전시장’을 둘러봤습니다. 이 책들은 한국지역출판연대(한지연) 소속의 크고 작은 지역출판사들이 그동안 펴낸 2천여권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 자치단체와 문화행정 관계자들이 챙기지 못한 지역이야기를 지역출판사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지역출판사가 지역공동체의 가치를 담아내는 지역 공공자산이라는 것을. 이날 그녀는 지역출판인들과 다정스레 인사를 나누며 참 소중한 일을 한다, 같이 힘내자,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했답니다. 이 말에 몇몇은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대요. 사실 지역에 살면서 숨어 있는 지역이야기를 캐내고 지역 작가들과 기록 작업을 하며 10년 20년 출판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식들 학원비를 줄이고,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책을 낼 때마다 은행 대출 담당자에게 사정사정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이날 전시된 책 2천여권은 365일 맨날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며 만든 책이며, 지역출판사에서 365일 고군분투하며 일궈낸 그런 책이거든요. 누구에게나 잘 팔 수 있는 책을 만들라고요? 그건 아예 지역을 포기하라는 말이지요. 출판문화마저도 서울공화국으로 만드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그건 반문화적인 짓거리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나요? 잘 팔리고 돈 되는 것만 책으로 짓는다면 지역이야기를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전북 고창군 해리는 35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데 밭매고 농사짓던 엄니들이 평생 살아온 마을 이야기를 글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답니다. 문화는 크고 작음과 돈 되고 돈 안 됨에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마을에 깃든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지켜내려는 애씀에 있답니다. 그래야 문화는 다양성으로 오래오래 빛납니다. 이 글이 ‘정숙씨 용비어천가’냐고요? 그렇게 읽혀도 하는 수 없겠군요. 저는 ‘온 나라 지역책 한마당’에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그 진심을 어렴풋이나마 엿봤거든요. 전날 열린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인사에서도 그녀가 비를 흠뻑 맞은 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무등’ 정신을,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을지를 말했답니다. 또 38년 전 광주항쟁 당시 거리에 솥을 걸고 주먹밥을 지어주던 너나 경계 없는 마음이 ‘대동세상’을 가져온다 말했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측은지심을 가질 때 모든 경계를 넘어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답니다. 이날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그녀의 말과 일치했습니다. 적어도 제 보기에 그녀는 남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 ‘작고 여린 것’들이 내는 희미한 목소리를 좇아 자신의 허리를 바짝 낮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왔답니다. 그러고는 서울에 집중돼 밀려나 있는 상처투성이 지역을 보듬어 안고 중앙과 지방, 서울 수도권과 그 외 지역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먼저, 온 나라 지역출판인들의 손을 잡고 고단한 어깨를 토닥여준 거지요. 문재인 정부의 지역자치, 지역분권은 이런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지요. 그녀의 말처럼 모든 인간이, 온 나라 모든 지역이 골고루 존엄한 존재로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참 간절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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