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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현철의 피플도 애니멀] 사람이 위험하니, 그냥 치세요?

등록 2018-11-22 18:23수정 2018-11-23 11:45

박현철
애니멀피플 팀장

“이제 아이의 ‘입양’을 말하는 이는 없고, 개 등 동물의 ‘입양’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돈 몇십만원 받으려고 젖도 못 뗀 어린 강아지 팔아버리는 게 개 ‘입양’의 거의 전부 아닙니까? 설사 공짜로 준다고 해도 어미 개한테 ‘입양 동의’ 받고 주는 겁니까? 어미 개, 강아지의 의사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 주인’의 이익 때문에 주는 것 아닙니까? 저는 행복이가 보신탕집에 팔려가는 다른 개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독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지난 1일 ‘파양됐던 성남시 행복이, 새 반려인 만났다’는 기사를 쓴 직후였다. 기사보다 훨씬 긴 이메일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개의 입양, 파양을 걱정하기 전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의 입양과 파양에 관심을 가져라” 정도가 될 듯하다.

애니멀피플팀이 사람의 입양이나 파양 문제를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이메일을 보낸 독자의 지적과 달리 돈과는 무관하게 개나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반려인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도 이 독자의 글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동물과 함께 사는 오늘날 사람들의 현실과 고민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은 가족인가? 입양이란 ‘양자를 들이는 일’이다. 가족이 되는 과정인 셈인데, 그 과정에서 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돈을 주고받는다. 돈을 주고 데려온 식구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 역시 두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지급했다. 그래서 ‘두 고양이가 내 가족’이라고 여전히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든 아니든 생명)을 들이면서 돈을 주고받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유기된 동물을 입양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맞는 말인데, 그러면 개나 고양이 외에 햄스터나 거북이, 물고기는 어쩌나. 이것들 역시 지금은 돈을 주고받는데, 유기된 햄스터나 거북이, 물고기만 입양해야 할까. 유기된 햄스터나 물고기를 어떻게 데려오고 데려다줄 수 있을까. 공공기관은, 동물단체는,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개, 고양이와 햄스터, 물고기 등은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름’의 기준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질문은 이어지는데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고팔아도 마음의 부담이 적은 가축을 제외하면 동물과 함께 살아선 안 된다.’

개와 고양이에게, 사람에게 쓰는 입양과 파양이라는 말을 쓴다고 개, 고양이가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대접을 바라면서 쓰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입양과 파양이라는 말을 사람에게만 쓴다고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사람대접을 못 받고, 개는 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세상이다.

이달 초 환경부가 동물 찻길 사고 예방 캠페인을 벌인다며 운전자 대응 요령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요령 중 하나는 이랬다. ‘도로에서 동물을 발견한 경우엔 핸들이나 브레이크를 급하게 조작하지 않아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물을 치는 쪽이 합리적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 차라리 동물이 죽거나 다치는 선택을 하는 게 합리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합리성의 추구는 꽤나 오랜 기간 동물의 생명 또는 이른바 ‘동물권’과 충돌할 것이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합리성이 동물권보다 우선할 것이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참, 쉽지가 않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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