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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현철의 피플도 애니멀] 히끄와 구스와 이름없는 동물들

등록 2019-03-14 17:58수정 2019-03-15 14:40

박현철
애니멀피플 팀장

히끄라는 이름의 반려 고양이가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17만명에 이르는 말 그대로 ‘우주 대스타’다. 히끄아부지(히끄의 반려인은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가 쓴 책 <히끄네집>은 7쇄를 찍었다. 나라 밖에도 히끄의 ‘랜선집사’(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양이 사진이나 영상 등을 즐겨 보는 사람)가 수두룩하다.

이런 정도니 히끄아부지가 올리는 히끄 사진이나 영상엔 1만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백개 댓글이 달린다. 히끄아부지는 1년 전부터 <애니멀피플>에 격주로 ‘히끄의 탐라생활기’를 싣고 있는데, 글이 실리는 날엔 자신의 글을 볼 수 있는 기사 페이지 링크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러면 애니멀피플의 홈페이지 방문자가 급증한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캡틴 마블>엔 귀여운 고양이 ‘구스’가 등장한다. 마블 코리아는 구스가 나온 영화 포스터에 반려묘를 합성해 응모하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전국의 고양이 집사들이 몰렸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오려 붙이고 합성하는 꽤나 번거로운 작업인데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 작품들이 넘쳐난다. 어느 응모자의 말처럼 “애정의 힘”이 아닌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같이 사는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젠 남의 동물마저 아끼고 사랑하는 시대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가축과 함께 살았지만 가축은 어디까지나 이름 없는 ‘그 동물’이었다. 반려동물은 가축과 달리 이름이 있는, 가족이다. 사람은 가축을 우리에 가뒀지만 반려동물은 ‘우리’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많은 동물이 예전보다 행복해졌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동물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세상이니까. 그런데 동물을 향한 인간의 태도엔 일관성이 없다.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불리엣 교수는 “식량을 제공하는 동물과 멀어질수록 반려동물과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동물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하지만, 난 여전히 이름 없는 닭과 소, 돼지들의 살을 먹고 그들의 가죽과 털로 만든 옷을 입는다. 나와 교감하고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는 반려동물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지만 공장식 축산으로 태어나고 희생된 동물들을 먹으면서 끔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동물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양이와 2년 넘게 살면서 동물 뉴스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식용동물을 소비하고 있지만, 때로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인류동물학자 할 헤르조그는 책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에서 이런 감정을 “동물을 ‘그들’에서 ‘우리’로 끌어안으면서 생긴 도덕적 비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런 비용을 ‘극복’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었던 ‘비건’이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 또는 소비자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한 메신저 단체채팅방에 들어갔는데 “반려동물을 키우다 동물권에 관심이 생겼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상을 일치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동물을 먹는 게 정상이고(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비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3엔(N)’이 신화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균열을 내줬으면 좋겠다. <애니멀피플>도 그 목소리를 퍼뜨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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