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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사양합니다, ‘노사평화의 전당’ / 박주희

등록 2018-11-26 18:02수정 2018-11-26 19:31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대구에 ‘노사평화의 전당’이 지어진다. ‘상생 협력 노사관계 전국 확산’을 위한 교육과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이란다. 대구 국가산업단지에 예산 20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노동·산업 문화역사관, 노사관계 교육·모의체험관, 노사상생 상징조형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2020년 개관을 목표로 현재 설계 업체 선정까지 마쳤다.

지난 1월 당시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한 신문 기고를 통해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외면하고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강성 노조로 인한 투쟁일변도 노동운동과 이에 따른 고임금 문제가 아닌가. 만약 대구시가 강성 노동운동과 고임금을 해결해준다면 대구는 단번에 가장 투자하기 좋은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구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없는 이유가 강성노조와 고임금 탓이고, 기업 유치를 위해 노사 화합의 상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지 대구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자. 직원 50명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이 90%, 월평균 급여는 284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68만원 적다. 제주를 빼면 전국 최하위다. 월평균 노동시간(173시간)은 전국 평균에 견줘 5시간 길다. 노조 조직률은 5% 수준이다. 대구의 대다수 노동자는 전국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으며 더 오래 일한다. 노동조합을 통해 목소리나마 내는 노동자는 극소수다.

그럼에도 대구시가 그동안 보여온 반노동적 태도에 비춰보면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일관되고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 사업이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이고, 예산 200억원 가운데 100억원은 국비가 지원된다는 점이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 업무보고 때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의 건의로 시작된 사업을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시가 고용노동부 공모에 제출한 세부 계획서를 보면, ‘붉은 조끼·머리띠 추방’ ‘강성노조·분규 걱정 없는 경제·노동 생태계 조성’과 같이 노동조합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분규·고임금 걱정 없는 생태계’를 ‘대구형 노사상생 모델’로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위와 같은 계획서를 낸 대구시를 선정했다. 정부가 공모까지 해서 이 사업에 국비 1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대구시의 건립 취지에 힘을 싣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는 정책 기조와 고임금이 기업유치의 발목을 잡는다는 관점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 일부에서는 잘 지어서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그러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건립 의도부터가 반노동적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성명서와 1인시위, 집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지만,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중이다.

대구시는 지난주에야 내년부터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도 올해부터 하고 있다. 아이들 밥 먹이는 것조차 예산 부족 운운하며 미루려다 부모들의 거센 항의와 요구에 떠밀려 겨우 시작하게 됐다. 이런 도시에 살다 보니 지방 정부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업도 대구시가 다른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재검토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노동 존중을 내세우는 정부가 나서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사업을 지원하려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실망스럽다.

일반적 의미에서 평화란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다. 그렇다면 노사관계에서 평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부당함을 참고 견디는 상황이 진정한 평화인가,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평화를 깨는 것인가.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노사평화의 전당이 추구하는 ‘평화’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사양한다, 노사평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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