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연금개혁이 안갯속에 갇혀 있다. 5년 주기의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오래전에 주어진 시간표이다. 기금소진 연도가 앞당겨진 이번 재정계산 결과도 대체로 예측했던 대로이다. 1년 전부터 관련 위원회를 운영했고 전국 순회 토론회까지 거쳤다. 그런데도 아직 정부안을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꾸만 불편한 상상이 든다. ‘국민 눈높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연금을 더 어렵게 만들면 어쩌나 하는. 지난 두 정부에서 국민연금은 개혁 없이 넘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기 전에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 도입을 구실로 건너뛰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공법을 택했다. 대선 토론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상대 후보를 향해 ‘용돈연금 만들 거냐’고 비판했지만 막상 취임 직후 재정계산 보고서를 접하고는 미래세대 부담을 줄여야 한다며 ‘더 내고 덜 받는’ 재정안정화를 추진했다. 당시 여론의 반발이 거셌지만 유시민 장관까지 투입하며 보험료율은 현행 9%로 유지하는 대신 대체율은 40%로 낮추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길로 갈까?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연금개혁 없이 가기는 어려운 처지이다. 그럴 만한 명분이 없는 데다가 대체율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보장성 강화까지 추구하니 노무현의 길도 아니다. 두마리 토끼를 잡는 묘책을 낼 수 있을까? 근래 여러 퍼즐 조각을 모으면 문재인식 연금개혁을 그려볼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니 보험료율은 그리 오르지 않을 듯하다. 대통령의 공약이면서 연금개혁특위에 참여하는 주요 가입자단체들의 요구여서 대체율 상향도 예상된다. 여기에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인상해도 대체율 50%가 가능하다고 말해온 김연명 교수가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합류했다. 이들 조각을 모으면 대체율은 45~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은 최소한으로 올리는 방안이 떠오른다. 정치적으로 이 카드는 매력적이다. 대체율 인상으로 공약을 지키고 보험료 책임도 일부 높인다. 노후불안에 대비해 ‘더 내고 더 받는’ 적극적 모양새이다. 게다가 기금소진 연도를 몇 년 뒤로 미룰 수 있다.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이 개선되었으니 사회적 합의를 위한 근거도 마련된다. 정말 묘책일까? 여기서 함정은 기금소진 연도이다. 국민연금 재정 진단에서 소진 연도에만 집착하면 착시가 생긴다. 국민연금에서 가입자는 전반전에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받기만 한다. 이러한 재정 시차로 인해 보험료율 인상은 지금부터 대략 기금소진 연도까지 재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대체율 인상은 그 이후부터 부정적 효과를 낸다. 대체율 50%로 가면서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올려도 기금소진 연도가 유지되고 2%포인트를 올리면 뒤로 미루어지는 이유이다. 문제는 기금 소진 이후이다. 이때는 현재 20~40대가 연금을 받을 때인데, 높아진 대체율로 지출이 늘어나니 그때 가입자의 부담은 더 무거워진다. 국민연금에서 대체율 10%에 부합하는 수지균형 필요보험료율이 대략 5%이다. 결국 이에 못 미치는 보험료율 인상은 소진 연도를 유지하거나 늦추어도 현행 국민연금이 지닌 재정 불안정을 악화시키고 미래 아이들의 부담을 더 키운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이 이 조각맞춤은 아니기를 바란다. 설령 우리끼리는 서로 박수를 치더라도, 미래 역사책에선 자기 세대 편향에 빠진 연금 포퓰리즘의 대표 사례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은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체계로 보완하고 국민연금 대체율은 그대로 두자. 국민연금 불안정을 더 악화시킨 정부로, 국민연금 개혁을 회피한 보수정부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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