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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현철의 피플도 애니멀] 나의 2019년, ‘돼지 불편’의 해

등록 2018-12-20 18:09수정 2018-12-21 10:10

박현철
애니멀피플 팀장

‘무슨 정육점이 이렇게나 많아.’

이사 온 뒤 동네 시장을 처음 둘러보고 받은 작은 충격이었다. 4년 전,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동네엔 적당히 한가하고 적당히 분주한 작은 시장이 있다. 최근 에스비에스(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끝판왕 돈가스집’이 있는 그 동네 시장이다. 시장을 가로질러 마을버스 정류장에 이르는 100m 남짓 거리에 많을 땐 여섯곳의 정육점이 있었다. 지금은 두곳이 사라져 네곳이다.

그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자주 사 먹는다. 주로 200~300g을 사는데, 살 때마다 놀란다. ‘어, 생각보다 싸네.’ “공장식 축산 덕분에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고깃집 삼겹살값은 툭하면 오르는데, 뭔 소린가 싶었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면서부터 그 뜻을 알게 됐다. 적어도 ‘체감적’으로, 고기는 버섯보다 호박보다 싸다.

2018년 3분기 전국에서 사육 중인 돼지는 1100만마리가 넘는다. 돼지‘고기’는 정말 흔하디흔한데 ‘돼지’를 보기는 참 어렵다. 또 그 흔한 돼지고기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달 초 경남 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새끼 돼지들을 망치로 때려 죽이는 영상이 공개됐다. 동물보호단체는 업체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고 영상을 본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해당 농장 관계자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태되는 새끼 돼지를 죽일 때 망치로 정수리를 때려 한번에 죽이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이 돼지를 도살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관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싸게 먹는 그 돼지들, 다들 그렇게 죽어. 왜 놀라고 그래.’

지난 9월 <한겨레21> 김현대 기자가 전라도의 한 돼지‘공장’에서 사흘 동안 일을 하면서 보고 겪은 돼지의 일생을 보도했다. 폭 60~75㎝의 좁은 쇠틀에 갇혀 다섯달마다 (출산이 아닌) 생산을 반복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도태되는 어미 돼지의 일생을 보고 있자니 불편했다. 그렇게 도태된 어미 돼지와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 뒤 6개월 만에 100㎏이 넘게 살을 찌운 수퇘지들이 ‘생각보다 싼 값’에 우리 밥상에 오른다. 김 기자는 기사 끝에 “불편한 진실의 현장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잔인했다”고 썼다.

불편해서, ‘고기를 줄여야지, 줄여야지’ 하고 중얼거리며 살았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진실을 알게 돼 불편하고,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불편하고, 그럼에도 쉽게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편해할 또 다른 이들을 위해 황윤 감독이 최근에 쓴 책 <사랑할까, 먹을까>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황윤 감독은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돼지를 다룬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연출한 뒤 돈가스 마니아에서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고기가 한때 우리와 교감이 가능한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당혹스러움, 충격, 상처를 동반하는 불편함이다. 나는 이 불편함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편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관행이나 제도가 처음으로 낯설게 보일 때, 그래서 그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 때 수반되는 감정이니까.”

때마침 애니멀피플은 12월 초부터 경북 봉화에서 자연 양돈에 도전하는 김성만씨가 쓰는 ‘슬기로운 육식 생활’ 연재를 시작했다. 다가올 2019년은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돼지에 대해 불편할 일이 많을 것 같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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