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1월23일 시민들이 모여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련의 사안에 관한 뉴스들을 읽고 보면서 언론과 언론인에게 더는 매개자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언론은 환경 감시 기능을 ‘파수견’ 기능으로 좁게 해석한다. ‘발고’의 차원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국민의 부정적 정서와 연결되는 이슈들을 보도할 때 특히 두드러진다. 대통령 부인 친구인 손혜원 의원이 현 정부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폭로성 보도들이 그러하다. 폭로 저널리즘은 강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주목 끌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공분을 자아내고 정쟁만 부추길 뿐 제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적 담론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희박하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사안의 성격을 정의하고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며 누구의 책임인지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 보도의 목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공직자윤리법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 위반에 주목하고 의혹을 살 만한 여야 의원의 사례들을 순차적으로 검증하는 탐사보도가 이루어진다면 언론은 정치인의 도덕성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떼거리 저널리즘’(pack journalism)이 일반화됐다. 떼거리 저널리즘은 후보자의 동선을 쫓는 기자들이 캠페인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도하는 관행을 의미한다.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인터넷 뉴스 의존도가 늘어나고 언론사의 이익 추구 동기가 결합하면서 정치 저널리즘(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외압’ 의혹 폭로, 손 의원의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 ‘투기’ 의혹 등)을 넘어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의 ‘폭행’ 의혹 건에서 보듯 거의 모든 저널리즘에서 재현되는 형국이다. 떼거리 저널리즘 관행은 기자에게 낙종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하고 다른 언론사와의 클릭 수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그런데 정파적 언론이 시민의 이익보다 자기의 이익을 더 앞세울 때 그 폐해는 무척이나 심각하다. 가령, 양승태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뉴스 가치 크기 측면에서 손 의원 ‘투기 의혹’과 비견될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종이신문과 이들이 소유한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일부 지상파방송의 양 전 대법원장 관련 보도량은 손 의원 ‘투기 의혹’ 보도 건수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이 의제설정 권력을 남용한다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더구나 주요 의제에 대한 인식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떼거리 저널리즘은 여론을 왜곡해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 우려할 만한 관행인 셈이다.
다양한 뉴스 생산 및 유통 플랫폼의 등장으로 언론이 ‘정치적·사회적 기후’를 결정하는 힘은 더 커졌지만 부적절한 보도 관행으로 저널리즘의 공적 기능은 오히려 약화됐다. 뉴스 이용자들은 ‘논란에 대한 사실 확인 기사’ ‘사건의 진행, 배경 정보 등을 상세하게 담은 기사’ ‘전문지식이 담긴 기사’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기사’(김위근 외. <한국의 언론 신뢰도: 진단과 처방>)를 원한다. 언론은 독자가 원하는 뉴스와 독자들이 알아야 하는 뉴스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의 매개자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