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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들만의 저널리즘’을 넘어서는 법

등록 2019-05-28 18:01수정 2019-05-28 21:31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한국방송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 갈무리
한국방송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 갈무리
2003년 2월 독립피디로 <문화방송>(MBC)의 대통령 취임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아 연출했던 때를 아직 잊지 못한다. 취임식 전날 기자단에 감사를 표하는 인수위원회 만찬에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불쑥 들른 거다. 밥을 먹던 기자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통령이 건네는 인사를 받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었고, 노 대통령이 마침내 내게 악수를 청한 순간 취임 소감과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질문했다. 달변가답게 그동안의 소회와 할 일을 술술 풀어냈다. 그러곤 “어디 기자에요?”라고 물으셨다. 소속과 취재 목적을 밝히지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뒤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국가 원수를 사전 협의 없이 인터뷰했다고 보도국에 연락을 해왔다. 자칫 서로 불편해질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엔딩 장면을 방송하고 싶었다고 솔직히 해명했고, 방송 이후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취재를 왜,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국민의 알권리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언론과 대통령이 서로 존중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에게 언론은 개혁의 대상이었고, 언론에게 대통령은 ‘우려’의 대상이었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 언론은 조롱으로 공격 강도를 높여갔다. 언론은 탈권위와 깨어 있는 시민을 상징했던 대통령에게 ‘호화요트’, ‘아방궁’, ‘논두렁시계’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배신감이라는 사회적 감정을 생산하도록 촉구했다. 특정인에 대한 프레임은 언론사 내부 데스킹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주지하다시피 언론의 작동 방식은 ‘블랙박스’ 메커니즘과 유사해 철저히 비가시적이다. 언론 스스로 뉴스 생산의 맥락을 밝히지 않는 한 왜 그러했는지 알기 어렵다.

요즘 화제인 <한국방송>(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는 우리 언론의 블랙박스를 적나라하게 해체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현 대통령과 대담을 진행한 자사 기자의 태도 논란을 스스로 재점화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예고편 자막부터 “능력 안 되는 KBS의 예고된 논란”, “언론 내부자들, 그들만의 저널리즘”이라니. 한국방송이 스스로를 이토록 모질게 ‘디스’해도 될까 싶을 정도도 충격적이었다. 지난주 ‘노무현과 언론개혁,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하다’ 편은 5.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패거리 없는 정치인이 당한 자살”이라는 예고 자막대로 본방송에서는 앞서 언급한 언론의 조롱을 상세히 소개하며, 사실이 아닌 가정법에 기초한 이른바 ‘라면 논평’, 즉 사실이라면, 실제라면, 그랬더라면 식의 보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밝힌다.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의 기획의도는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조목조목 파헤친다”는 것이다. 나는 저널리즘으로서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다시보기 콘텐츠의 다양성이라고 본다. 본방송 요약본 ‘J훅’, 골라보는 ‘J컷’, 취재 후기인 ‘비하인드J’, ‘거의’ 무편집본, J라이브 등 다양한 포맷으로 자신들의 블랙박스를 시청자에게 펼쳐 보여준다. 취재 대상이 대통령이든 자사 기자이든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전달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가볍지 않냐는 비판도 있지만 시청자가 생각할 판단의 근거를 다양한 경로에서 접하도록 만든 점에서 창의적이다.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실을 찾고, 사실이 진짜인지 판단하려는 독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들에게 독자를 이해하는 능력으로서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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