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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연구비는 사람이다 / 김우재

등록 2019-09-23 17:56수정 2019-09-24 13:37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이은권 의원에 따르면, 과학기술 연구개발예산 부정사용의 90%는 대학 연구실에서 발생한다. 이 중 70%가 학생 인건비 횡령이다. 거의 매달 터지는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대부분이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를 착복한 사건이다. 이런 일이 지난 수십년간 되풀이되고 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연구재단은 제대로 된 대책을 단 한번도 내놓지 못했다.

대학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책임자는 약 1만7천명,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석·박사 과정 학생 연구원만 7만9천명이다.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로 한해 정부 연구과제에서 지출되는 돈은 약 4500억원이다. 대학은 국내 박사급 연구인력 10만명 중 6만명을, 석·박사 학생 연구원의 82%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정부에서 지출되는 연구개발비의 22%에 이르는 4조3천억원을 집행하는 거대 연구기관이다.

석·박사 학위 취득이 직업의 안정성 및 계급이동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현재의 대학생에게 대학원 진학은 차악의 선택이다. 대학원에서 주는 학위가 직업을 보장했던 과거에는 교수의 갑질과 열악한 처우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대학원은 가야 할 경제적 동기도 보상도 없이 교수의 갑질까지 견뎌야 하는 지옥이다.

학생 인건비가 유용되는 방식은 언제나 비슷하다. 교수가 써낸 연구계획서에는 인건비 항목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 집행은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연구실에는 많은 학생이 서로 다른 연구를 진행 중이고, 연구 주제에 따라 인건비도 차등지급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연구비를 제안했을 때와, 연구비를 집행할 때의 인원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관료들은 이런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다. 관료주의적인 연구비 집행 방식은 교수들을 ‘풀링’이라는 불법으로 이끈다. 풀링은 연구실로 들어오는 모든 인건비를 일단 개개인의 통장으로 받은 후, 이를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연구실 통장으로 입금하면, 여기서 교수가 재량으로 인건비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풀링은 관료주의적 타성이 교수의 비윤리적 양심과 만났을 때 벌어지는 최악의 범죄다.

학생 인건비 횡령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과기정통부와 연구재단은 비슷한 대책을 내놓는다. 연구비리를 저지른 교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연구 책임자들의 윤리의식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료주의적 대책이 수십년째 먹히지 않는 이유는 첫째, 연구비 집행 구조가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를 외국에서는 ‘그랜트’(grant)라고 한다. 그랜트는 보조금이다. 그랜트로 주어진 연구비는 보고서 따위로 사후심사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랜트를 받고 열심히 연구하지 않은 교수는 다음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각종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이런 절차 대부분은 관료들을 위한 것이다. 연구비 집행에서 중요한 것은 연구비가 적절하게 쓰였느냐의 문제지, 연구비가 연구 제안서대로 사용되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머지 문제가 풀린다.

둘째, 처벌기준을 강화해도 학생 인건비 비리가 터지는 이유는, 연구비 사용 및 감사가 같은 대학의 교수와 연구비 관리 부서 사이의 암묵적 카르텔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건비 횡령 사건이 벌어지면, 최종 책임을 지는 건 연구 책임자다. 횡령의 주체인 교수가 처벌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연구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학도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처벌의 당사자가 교수뿐이라면, 대학의 입장에선 연구비를 제대로 관리할 이유가 없다. 교수는 대학에, 대학은 정부기관에 견제받아야 한다. 교수가 관료를 상대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학의 외부 연구비 관리를 민영화하고, 정부는 연구비 관리 체계로 이들을 관리할 수도 있다.

학생 인건비 횡령의 깊은 이면엔 경제적 불평등이 숨어 있다. 거기엔 교수의 갑질이 있고, 대학원생의 슬픔이 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는 부패의 문화가 있다. 연구비 문제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연구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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