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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수피아’가 끼친 해악 / 신재은

등록 2019-12-12 18:27수정 2019-12-13 02:37

신재은 ㅣ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마피아란 원래 범죄조직을 일컫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특정 분야에서 민-관-학이 업계 이득을 위해 사적으로 강력하게 결탁하는 경우를 두고 소위 ‘○피아’라고 부른다. 학교 동문으로 구성된 공무원과 전문가, 기업인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이익을 보장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의 폐쇄적인 이너서클은 결국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런 ○피아는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크고 작은 조직에 늘 존재하며 다양한 분야에 모두 존재한다.

해양 분야도 마찬가지로 공고한 수산 관련 패밀리인 ‘수피아’가 존재한다. 지난 9월 미국이 우리나라를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 배경도, 결국 수피아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일조했다.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보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미 간에 벌어지고 있는 고도의 외교적 수싸움의 일환으로 의심하는 여론이 있지만, 우리나라가 심각한 빌미를 제공한 것만큼은 팩트로 봐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불법어업국에 등재한 핵심 이유는 우리 정부의 미흡한 행정조치 때문이었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카밀라) 연례회의에 참여한 대한민국 정부대표단은 2017년에 카밀라 보존조치를 위반하며 취득한 어획물이 국내에서만 판매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의 어획물은 해당 선사가 정부로부터 어획증명서와 수출증서를 정식으로 발급받아 해외 수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원양업체가 불법어업의 의도성이 있었는지를 차치하더라도, 마치 장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인증서를 만들어준 꼴이다. 수피아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선사가 보존조치 위반으로 조업을 중단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노력을 했다.

혹자는 해양수산부의 본래 업무가 산업 진흥이기 때문에 업계 감싸기 태도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특정 업계 혹은 업체에 특혜를 제공하거나 공정하지 못하게 처리했다는 의혹이 국제사회에 제기되면, 산업 진흥은커녕 수산업 전체를 치명적 위기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해수부 내부에서도 기존 관행에 대한 자성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카밀라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도 남극해 보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최근 국회에서는 원양산업발전법에서 법 위반에 따른 벌칙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에도 불구하고 남극 불법어업에 대해 책임이 무거운 고위 공무원이 불법 어획물 관리 통제를 담당하는 해수부 산하 기관장으로 가는 등 여전히 그들만의 성은 견고해 보인다.

해양환경 이슈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의 충격적인 모습이 전해지면서 해양 오염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들의 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연근해 어획량은 100만톤이 붕괴됐다. 미국은 자국의 해양포유류보호법에 따라 고래 혼획 가능성이 있는 어구로 어획된 생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또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아이치 타깃(생물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한 공동 목표) 달성, 어선원 보호 및 인권침해 방지 등 해수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번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을 계기로 해수부는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들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해양환경정책에 대한 눈높이는 과거와는 달라져 있다. 해수부가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해양정책 비전을 수립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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