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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저작권 약탈하는 방송제작 편법 관행

등록 2020-01-14 17:06수정 2020-01-15 02:36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방송(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제작 팬엔터테인먼트)이 방송사와 제작사 간 저작권 갈등을 겪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니 방송사는 ‘관행’대로 제작비 일부를 지급한다는 주장인 반면 제작사는 수익을 공개해 기여도에 따라 ‘투명하게’ 배분해달라는 주장이다. 괴이한 건 방송을 종영한 지금까지 방송사-제작사 양 당사자 간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란 점이다.

사실 방송사-제작사 간 ‘선 송출, 후 정산’을 하는 일은 오래된 관행이다. 시청자 반응에 따라 계약 조건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로 대개 종영 전후 계약서를 쓴다. 계약서가 없으니 방송사에서 제작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제작사와 스태프 간 계약서 작성도 늦어질 수 있고,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적정 임금이 제때 지급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전제작이 아니다 보니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늘 수도 있다. 주로 지방에서 촬영한 이 드라마도 노동시간과 수당 문제가 불거져 공론화된 적이 있다. 제작사에 확인한 결과, 노사 협약에 따라 스태프에게 임금을 다 주고 정산을 마쳤다 한다. 제작비를 못 받은 상태인데도 제작사는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독립제작사에 프로그램을 의뢰할 경우, 계약 체결 즉시 ‘사전제작비’를 지급한다. 우리는 계약의 기본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예사여서 지난해 말 겨우 계약서에 따른 거래 이행과 표준제작비 등을 점검하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재허가·재승인 과정에 준수 여부를 반영할 계획이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회의적이다. 방송사의 의무가 아니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 갈등이 생길 때 중재할 기구나 제도도 없다. 무엇보다 ‘외주제작’이라는 표기가 매우 잘못됐다. 방송영상물에는 지식재산권이 있다. 무엇보다 동영상 플랫폼에서 유통 수익은 계속 발생한다. 방송영상물은 일반 제품과 가치가 달라 ‘외주’가 아니라 ‘창작자’인 ‘독립제작자’의 지식재산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방송법에서도 아직 ‘외주제작’이라 쓴다.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사려 깊은 표현이 아쉽다.

방송사-제작사 간 부조리한 제작 관행 개선은 2017년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제작 도중 유명을 달리한 고 박환성·김광일 피디를 계기로 본격 논의되었다. 고인은 불공정 계약 상태에서 부족한 제작비로 촬영하다 변을 당했다. 당시 다수의 ‘을’은 제작 전 계약서 체결, 저작권과 수익의 공정한 배분, 제작비 산정과 지급 투명성, 노동시간과 노동환경, 인권 문제 개선 등에 대해 ‘갑’인 방송사에게 제도를 통해 ‘의무’를 강하게 부여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외쳤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으로 최종 확정됐다. 창작물 저작권은 창작자 귀속이 원칙이다. 잘못된 계약 관행을 핑계로 창작자의 노고와 기회를 약탈하지 말라. 제작비를 주지 않은 상태로 저작권을 소유하려는 건 부당하다. 모든 독립제작자와의 계약에서 ‘갑’은 새해엔 공정해지자.

현재 <동백꽃 필 무렵>은 넷플릭스에서 절찬 스트리밍 중이다. 넷플릭스는 저작권 사용자로서 <kbs미디어>와 이 드라마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갈등 중인데, 다소 의외의 유통 계약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가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도록 편견과 관행을 깨는 협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최선영 ㅣ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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