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ㅣ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
[정부의 검찰개혁과 그에 맞물린 시민사회의 논쟁이 ‘2라운드’로 접어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안에 이어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시한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 그리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조치가 새 탄목이 되었다.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21일 예정된 전국검사장회의는 당장의 고빗사위가 될 법하다. 진영 간 내지 정부-검찰 간 갈등의 프레임을 넘어, 사안의 타당성을 깊이 짚어볼 만하다. 두 전문가가 논리와 논거를 달리하되, 정부의 검찰개혁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거나 진정성이 의심받을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닮았고,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현행법 위반일 수는 없다는 해석이 또 닮았다.]
이제는 울산시장 선거 관련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공개 거부 조치하면서도,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소장이 범죄의 확정적 문서는 아니고, 재판 전 공개된 공소장은 피고인의 반박이 들어가 있지 않기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비공개하는 게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동안 국회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가 공소장을 제출한 사건이 정치권의 언론플레이용으로 종종 활용돼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법치를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이 마치 변호인처럼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강조하면서 국가 중대사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는 “조금 이따 알아도 될 권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얼마나 국민적 관심사가 크면 금방 언론사에서 공소장 문안을 입수해 공개해버렸을까. 실효성도 없는 조치를 취해놓고 개혁을 들먹이고 있으니, 요즘 유행어인 “계획이 있었냐?”고 묻고 싶다.
그동안 국회의 요구로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이 관행화된 만큼 일정 기간을 두고 이러한 관행을 파기하기 위한 심의나 예고 절차를 밟는 것도 필요했다. 다른 무수한 사건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는데 이를 법무부 장관이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릴 성격의 사안은 아니다. 인권 보호에 철저한 미국도 기소 즉시 공소장을 누리집에 공개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기소 자체의 신뢰성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이 사건 관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 여권 실세에 대한 기소 여부가 4월 총선 직후에 결정될 판국에, 법무부는 수사와 기소 검사를 분리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겠다고 한다. 검찰청법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드시 동일인이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라는 취지로 해석되지는 않기에 수사와 기소의 주체를 분리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전세계적으로도 이를 분리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검경 간 수사·기소 분리는 있어도, 검찰 내 업무권한을 분할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수사의 연장선이 기소이고 수사를 직접 한 검사가 죄가 있는지 여부를 제일 잘 알 테니 기소 여부도 직접 결정하는 게 맞다. 사건 기록만 들춰본 제3자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건 오히려 정치적 외압 가능성만 두배로 높이게 된다. 정치권이 수사검사에게 압력을 가해 수사하지 않게 하거나 기소검사에게 접근해 불기소 처분하게 유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분리했다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그 업무책임은 수사검사가 져야 할지 기소검사가 져야 할지도 애매하다.
이런 전문적인 측면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 지금처럼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연루된 권력형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와 이를 틀어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게 뻔한 상황에서 갑자기 적정 절차 없이 공소장 비공개와 수사·기소 분리를 개혁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뻔뻔한 일인가. 비리를 직접 수사하고 지휘한 대부분의 검사들을 특정 지역과 인맥 위주로 편성해 조기에 교체해놓은 직후에 말이다.
기소에 문제가 있으면 판사가 무죄 판결로 응징하면 된다. 구속적부심사제도도 있다. 기소권 남용을 포함한 검사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하고 기소하도록 이미 공수처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정권이 초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를 줄줄이 받고 기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검찰 내부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유례없는 실험을 해야 할 이유가 단순히 “개혁을 위해서”인가. 검찰의 총수까지 나서서 “수사·기소 분리는 권력형 부패 범죄에 대응하는 데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굳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면 앞으로 설치할 공수처에서나 그렇게 시도해볼 수 있다. 정부가 검찰개혁의 주요 결실로 내세우는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들이 연관된 정치적 사건을 더욱 정치적으로 처리해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측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법무부 장관이 말하는 공정한 기소권 행사를 위해 공수처 내의 수사와 기소 주체를 분리하는 실험을 할 만하지 않은가.
법무부 장관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 사례로 잘못 인용한 일본의 사례는 수사검사로부터 사건을 나중에 넘겨받아 공판에 임할 공판검사를 미리 총괄심사검찰관으로 임명해 기소 전 수사 단계에서부터 개입해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 제도다. 기소 여부에 대한 의견이라도 제3자가 제시하니, 이런 의견을 참조하여 수사검사가 스스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생기는 셈이다. 이러한 식의 제도 개선이라도 추구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권력형 비리 수사가 마무리된 뒤 논의하는 것이 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다.
그동안 역사적인 과제인 검찰개혁이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처럼 변질되고 있는 측면을 많은 국민이 비판하고 있다. 모처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청와대를 수사하는 건 개혁세력을 억압하는 행위”라는 프레임까지 씌워서 물갈이한 것 말이다.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운전사를 성도착증으로 몰아 교체하게 하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가정부를 폐렴환자로 조작해 쫓아낸 <기생충>의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만일 집주인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다들 짐 싸서 내 집에서 나가라”고 외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