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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감사하다 / 서복경

등록 2020-02-26 18:25수정 2020-02-27 09:27

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치료와 자가격리 상태에서 일상의 중단과 고립을 경험하면서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모두가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이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험이었다. 뽑기통에서 무작위로 구슬 하나가 튀어 오르듯이, 당신들이 아니면 내가 먼저 겪었어야 할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간 어쩌면 내가 겪고 있었을 어려움을, 먼저 닥쳤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감내해주어서 감사하다.

요 며칠 ‘순서가 바뀌어 내게 그 일이 먼저 닥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생계와 생활을 유지하느라 빽빽하던 일상이 갑자기 멈추어버렸을 때, 내가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가족, 직장 동료 혹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코로나19’를 옮겼거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막막한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다. 내가 만난 그 사람이 내게 그걸 옮겼다는 걸 알았을 때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억울했을 것이다.

나쁜 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 원망하고 분노한 다음 체념하고 병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로 고통스럽게 나아가듯이, 그렇게 심적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을 버텨야 했을 것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 피해자인 나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고약한 이것은,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거나 확진 이후 완치가 되더라도, 꽤 오랫동안 다시 양성이 되거나 재발하지 않을지 나를 두렵게 만들 것이다. 내 잘못은 없는데 나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해는 하지만 서운할 것이다. 자기 순서가 먼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인 나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매일매일 상처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어려움을 단지 나보다 먼저 당했다는 이유로 감당하고 있는 모든 시민들께 감사하다.

또 ‘코로나19’ 검진과 치료, 방역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는 공무원과 시민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검진과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은 밤낮이 없고, 병원 문을 닫고 대구·경북 지역으로 향하는 의료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하얀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과 방역 업무 종사자들이 고맙고 안쓰럽다. 감염 위험이 있는 시민들의 소재 파악을 위해 수백명의 경찰도 전국을 누빈다고 한다. 검진 희망자들이 급증하면서 1339 전화를 연결하는 업무도, 선별진료소 종사자들의 업무도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폭증하고 있을 것이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확진자들을 각 병원으로 이송하는 교통편 운영자들의 업무 또한 그럴 것이다. 업무량 증가뿐 아니라 감염 위험에 대한 부담까지 감내해주어서 감사하다.

또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해 시민들의 선한 에너지를 북돋우는 기사를 써내는 언론인들,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걱정을 덜어주려는 건물주들, ‘힘내세요’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익명의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힘을 느낀다. 시시각각 거짓 정보를 정정하고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에 관한 정보를 확산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민들의 온라인 일상도 분주해 보인다. 폭증하는 마스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마스크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진단이나 치료에 필요한 약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 또한 그럴 것이다. 이럴 때 기껏 글 몇 줄로 감사를 전하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는, 그저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큰 물길이 좀 잡히면 누군가는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할 것이고, 곧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당장의 확산 추세가 좀 누그러진다고 해도 이 사태의 후과는 꽤 오래갈 것이다. 소비심리가 살아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세계가 함께 맞닥뜨린 문제라 우리 힘만으로 극복 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선한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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