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순 ㅣ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지난달 29일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대학원생 한명이 확진자가 됐다. 우선은 아는 분에게 그 학생 상태, 연구실 상황을 물어봤다. 그러는 사이 2월 1·2주에 이어 세번째로 실시한 ‘코로나19 국민위험인식조사’가 목표 응답 수에 도달했다. 곧 도착할 원자료를 기다리다, 지난 조사로 확인한 점을 공유해본다.
코로나19는 신종 전염병이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이 “신종”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강조한다. 같은 코로나여도 공식 병원체명 사스-코브-2(SARS-CoV-2)인 코로나19는 메르스·사스와 다르며, 점점 더 모를 성질을 드러내고 있고, 그 피해와 대응도 아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위기소통 문헌에서 이런 “불확실성”은 단골 주제이고 확실한 해법은 없지만, 과학과 정치가 지양해야 할 위기소통의 ‘유혹’이 무엇인지는 알려준다. 위협이 키우는 불확실성과의 대결에서 과학은 기존 지식의 정확성을 강조하려는 유혹을, 정치는 복잡한 실재를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고 ‘확신’하려는 유혹을 조심하라고.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달, 공적 위기소통에서 우리는 어땠을까.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인 만큼, 앞으로의 전개가 불확실함을 강조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그 하나하나의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대신 단일 시나리오로 당장의 확신을 전하려는 유혹에 취약하지는 않았나. 어제까지 맞게 쓰인 정보가 오늘부터는 아니게 되는 불확실성의 속성에 대한 이해 형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왜 전과 말이 다르냐’는 국민·언론의 저항과 비난을 자초하면서.
불확실성의 소통 미숙도 문제지만 국민의 감정 촉발 요인에 맞춘 적절한 위기소통 전략의 부재도 문제다. 겉으로는 같은 불안으로 보여도, “닷새째 확진자 0”을 기록하던 시기의 불안은 매일 확진자가 폭증하고, 마스크를 못 구하고, 독감 수준의 병이라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늘면서 느끼는 불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연히 다른 불안 대응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 전자에는 지나치게 과민하지 말자는 ‘완화’(calm down)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앞으로 시행할 강력한 대책들이 신속하게 발표되면서 안심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에는 국민의 불안이 불만과 불신으로 진행하는 상태이므로, 지금이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하고 소소해도 해결의 증거를 쌓는 ‘작은 승리’(small victory)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성급한 계획 발표보다 수행, 조치한 것의 발표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끝으로, 달라진 방역 전략에 적합한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고 심각하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빨리 잡겠다”는 정부 의지의 일방향 전달은 심지어 해롭다. 이전까지는 손 씻기 같은 개인 수준의 예방 행위에 주력했지만(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이 전략을 즉각, 전면 수용했다!) 새 방역 전략에서 성과를 내려면 이제는 “한동안 그대로 있어라”가 가능한, 또는 가능하지 못한 집단과 지역의 조건을 파악하여 세심한 위기소통을 해야 한다. 나 홀로 안 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니까.
주된 경계가 국내 병원이었던 메르스와 달리, 코로나19는 초국가, 탈경계 위기(transboundary crisis)의 성격이 뚜렷했고, “자국민 보호”라는 정치외교적 책무성 발휘나 설득력 있는 의미 형성 노력이 위기소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정치의 누적된 갈등의 영향도 작지 않아, 더욱 다양해진 이해관계자와 조율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것, 곧 정부 당국의 거버넌스 역량이 바이러스 대응 못지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장기전에 돌입한 코로나19 사태가 만든 시험대엔 정부만이 아니라 언론, 시민 모두가 함께 서 있다. 매일 속보로 뜨는 확진자 수에 최소한의 평정심을 챙기는 것도 일이고, 사회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임을 긍정하고 실천하는 것도 큰일이다. 열린 귀와 마음으로 위험정보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주고받고, 합리적이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서로의 위기에 대응하는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