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ㅣ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에겐 직업병이 있다. 그 병의 증상은 이렇다. 한마디 말의 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말한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해석이 어긋날 수 있음을 맹신한다. 그런 직업병적 편견에서 봤을 때 정부, 언론, 보건 전문가들이 요즘 많이 쓰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말에 유감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은 공중보건 분야에서 감염병 확산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써온 개념이다. 말로는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하지만 실제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물리적 거리두기’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휴교 조처를 내리거나, 공적, 사적 모임을 취소하는 등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을 권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늘 연결되어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란 용어는 그 말이 원래 의도한 의미로부터 어긋나 이해되기 쉽다. 사회과학 용어로서 ‘사회적 거리’는 한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가령 계층적으로, 지역별로 구분되는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거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 자체가 집단 간의 분리를 유지하려는 우리 사회의 숨겨진 욕망들에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노인들같이 사회적 도움이 늘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존을 위협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콜센터 직원들같이 물리적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확인시켜주는 아픈 말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감염’이란 말도 유감이다. 그 이유는 일단 이 말의 모호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건당국이나 언론에서는 이 말을 (병원으로부터가 아니라) 지역사회로부터의 감염, 혹은 정확한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운 감염 등 적어도 두가지 의미로 써온 것 같다. 전문가들이 이 말을 쓸 때 이 중에서 어떤 의미로 쓰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또 이 말이 지역사회‘로부터’의 감염을 말하는 것인지, 지역사회‘가’ 감염되었다는 것을 말하는지도 의료보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혼란스럽다. 위험 시기의 소통에서 다중의 해석이 가능한 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모호성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사회 감염이란 말이 사람들 머릿속에 ‘지역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지역사회는 매우 취약한 곳, 피해야 할 곳, 위험한 곳, 음습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집 문밖의 ‘지역사회’엔 바이러스들이 득실거릴 것 같다는 이미지를 퍼뜨릴 수도 있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우리 지역사회를 감염이란 말과 연결시켜 더 주눅 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의 뒷골목 이미지가 아니라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의 이미지가 지역사회에 필요하다. 그런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다른 말이 필요하다.
유감을 넘어 대안도 하나씩 제시해보고자 한다. 가령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서는 ‘잠시 서로 떨어져 있기’ 같은 말이 어떨까?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과 달리 뭔가 더 애틋한 감정, 하루라도 빨리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나? 또 이 말을 통해 지금의 상황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강조할 수 있다. 지역사회 감염은 그 의미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좋겠다. ‘경로 불확실 감염’ 같은 말을 조심스레 제안해본다.